"女연예인 얼굴 합성" 광고까지…대법 판결에 더 커진 '리얼돌 합법화' 논란

입력 2019.08.01 16:21 | 수정 2019.08.01 16:59

大法 "사적 영역에 국가 개입 최소화"…‘리얼돌 수입’ 허가
"女연예인 얼굴 합성" ‘사기성 광고’까지…‘性상품화’ 논란 가열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 청원 20만명 넘어…靑 공식 답변해야
여성계 "여성혐오 늘어날 수도" VS 업계 "범죄로 예단말라"

지난 6월 말 대법원이 성인 여성의 신체와 비슷하게 만든 성인용품인 ‘리얼돌(real doll)’ 수입을 허가하는 확정 판결을 내렸지만 오히려 국내에선 ‘리얼돌 합법화’를 둘러싼 논쟁이 가열되고 있다. 특히 "리얼돌에 연예인이나 이상형의 얼굴을 합성해 제작해 주겠다"는 ‘사기성 광고’까지 등장하면서 논란은 더 커지고 있다.

대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리얼돌의 수입·판매를 금지해 달라고 요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한 달도 안 돼 20만명이 넘는 동의를 얻어 청와대가 공식 답변에 나서야 할 상황이 됐다. "리얼돌은 여성을 성(性)상품화한다"는 비판이 일자 업계는 "성인용품 시장이 발달한 선진국에선 이미 리얼돌 합법화·사업화가 활발하다"고 맞서고 있다.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에서 거래되는 리얼돌.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에서 거래되는 리얼돌.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 홈페이지 캡처
◇리얼돌 200만~300만원대 거래…국내 제작은 불법 아냐
1일 업계에 따르면, 리얼돌은 인형 피부의 재질, 크기 등에 따라 200만~300만원 대에 거래되고 있다. 리얼돌 판매·제작 업체 ‘리얼아트돌’ 관계자는 "보통 160cm 사이즈에 주문자들이 원하는 조건을 하나씩 더하며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구조"라며 "일본산 리얼돌은 700만원 대까지 가격이 올라간다"고 했다.

리얼돌은 2002년 미국의 로봇제작업체 ‘아비스’가 영화 촬영에 사용되는 실물 크기 마네킹에서 힌트를 얻어, 고급 실리콘으로 제작한 것이 시초라고 한다. ‘진짜 사람 같은 인형’이라는 이름 그대로 피부·관절 등이 사람과 얼마나 유사한지에 따라 가격도 천차만별이다.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에서 거래되는 리얼돌.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 홈페이지 캡처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에서 거래되는 리얼돌. /온라인 성인용품 판매업체 홈페이지 캡처
사실 국내에서 제작되는 리얼돌은 불법이 아니다. 관세법에 따라 ‘풍속을 해친다’며 수출·입이 불가능했을 뿐 국내 제작 및 판매에 대해서는 법 규정 자체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2017년 리얼돌을 수입하려던 성인용품 쇼핑몰 A업체가 인천세관으로부터 ‘보류 처분’을 받자 행정소송을 내면서 ‘리얼돌’을 둘러싼 논쟁이 표면화됐다. 1심 재판부는 지난해 9월 세관 측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재판부는 "리얼돌은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거나 왜곡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정도로 노골적으로 사람의 특정한 성적 부위 등을 적나라하게 표현 또는 묘사한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며 수입 보류 처분이 정당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은 달랐다. 2심 재판부는 지난 1월 "성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사용을 목적으로 한 성기구의 수입 자체를 금지할 법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며 "개인의 사적이고 은밀한 영역에 대한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는 인식을 전제로 한 것"이라고 1심 판결을 뒤집었다. 대법원은 지난달 항소심 판결을 확정했다.

A업체 관계자는 "헌법에 규정된 개인의 행복추구권에 비춰봐도 자신의 집에 리얼돌을 두는 것은 당연한 권리"라며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한국의 성문화가 양지로 올라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했다.

◇‘연예인 얼굴 합성해주겠다’는 마케팅까지…업계 "아직 합성 기술 수준 안돼"
리얼돌을 둘러싼 논쟁은 대법원의 판단 이후 더 치열해졌다. 한 업체가 리얼돌에 연예인을 비롯해 실존하는 사람의 얼굴을 합성해주겠다고 홍보하면서, 리얼돌을 둘러싼 인격권과 성상품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B리얼돌 판매업체는 ‘자주 묻는 질문’ 게시판에 “원하는 얼굴로 제작이 가능하다”고 썼다. /홈페이지 캡처
B리얼돌 판매업체는 ‘자주 묻는 질문’ 게시판에 “원하는 얼굴로 제작이 가능하다”고 썼다. /홈페이지 캡처
B리얼돌 판매업체는 홈페이지를 통해 개인 맞춤형 리얼돌 제작이 가능하다고 소개하고 있다. 구매자가 원하는 연예인이나 이상형의 얼굴을 합성해 주문·제작할 수 있다고 한 것이다. B업체 홈페이지에서는 맞춤형 인형을 주문할 때 '문의사항' 게시판을 이용해야 하는데, 실제로 이 게시판에는 사진 업로드 기능이 마련돼 있었다. 사진 속 인물의 동의를 구했는지 등을 확인하는 절차는 따로 없었다. 불특정 다수의 사진이 리얼돌 제작에 쓰일 수 있는 구조다.

하지만 리얼돌 정식 수입 업체들은 "사기일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업계 관계자들은 B업체처럼 가상화폐로 거래하고, 회사 주소나 전화번호같은 기본 정보도 기재하지 않은 곳은 대부분 리얼돌을 취급하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국내 리얼돌 제작업체 측은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을 합성해 제작해달라는 요청이 지금까지 1건도 없었다고 밝혔다. 한 제작업체 관계자는 "실존인물을 스캔해서 리얼돌로 만들려면 우선 비용이 천문학적일 것"이라며 "아직 그 정도로 기술이 발달하지도 않았다"고 했다.

◇"리얼돌 수입·판매 금지해달라" 靑 청원 20만명…"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일 아냐"
리얼돌 논란은 청와대로도 번지고 있다. 지난달 8일 올라온 ‘리얼돌 수입 및 판매를 금지해 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은 전날 동의자가 20만명을 넘어섰다.국민청원이 한 달 이내 20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으면 청와대 및 정부 관계자의 답변을 들을 수 있다. 청원인은 "한국에선 실제로 연예인이나 지인의 얼굴과 음란사진을 합성해 인터넷에 게시하는 행태가 벌어지고 있는데, 리얼돌도 안 그러라는 보장은 없다"며 "움직임 없는 리얼돌에 만족하지 못한 사람들은 살아있는 여성에게 성범죄를 행할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리얼돌 사용으로 성범죄가 오히려 증가할 수 있는 만큼 수입·판매를 금지해 달라는 것이다.

리얼돌 수입 및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리얼돌 수입 및 판매 금지를 요청하는 청와대 청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이에 대해 한 여성단체 활동가는 "리얼돌이 유통되는 상황이 만연해지면, 그만큼 여성 혐오도 늘어날 수 있다는 공포가 있다"며 "여성들이 모든 성인용품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형태를 띈 리얼돌에 민감한 이유를 살펴야 한다"고 했다.

반면 업계 관계자는 "(리얼돌을)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신체적 제약으로 성적 자기결정권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도 고려해야 한다"며 "아직 발생하지 않은 일로 범죄로 이어질 것이라고 예단할 필요도 없다"고 했다. 지난달 31일에는 역으로 '리얼돌의 수입은 허용돼야 한다'는 청원이 올라오기도 했다. 이 청원은 1일 오후 3시 기준 1000여 명이 동의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리얼돌과 관련한 법령이 불분명하기 때문에 법적 기준부터 바로 세울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한 성범죄 전문 변호사는 "사법부의 (수입 허가) 판단이 나온 상황에서는 결국 행정부가 어떤 기준을 마련하는지가 문제"라며 "실제 인물의 사진을 합성하는 경우는 명예훼손이나 모욕죄로 저촉될 수 있는 만큼 규제하고, 유통방식 등에 대해서도 조치가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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