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기인데 예약 급감"… 日여행 가이드들, 줄줄이 무급휴가

입력 2019.07.31 03:34

일본 불매 운동 한 달만에… 국내 패키지 여행 업체들 직격탄

김창규(가명)씨 부부는 지난주부터 자가용 대신 버스를 타고 경기도 자택에서 서울 직장까지 출근한다. 40분 걸리던 출퇴근 시간이 1시간 40분으로 늘었다. 김씨는 "집에 돌아오면 파김치가 된다"고 했다. 대신 한 달 주차비 24만원, 기름값 30만원을 아낄 수 있다. 여름휴가도 안 간다. 초등학생 아들이 "왜 우리는 휴가를 안 가냐"고 했을 때 김씨 아내는 "엄마·아빠가 갑자기 수입이 없어져서"라고 답했다. 부부는 35년째 일본 여행 '랜드사'를 운영한다. 패키지여행은 소비자들이 '여행사'에서 패키지 상품을 구매하면, 여행사와 계약한 랜드사가 담당 지역에서 버스 대절 업체·숙박 업체 등을 엮어 상품을 구성하는 구조다. 김씨 회사는 직원 4명이 있다. 직원 월급과 사무실 월세 등 고정 비용만 매달 2500만원씩 들어간다. 하지만 2주 전부터 회사 매출이 '0'원이다. 잔여 예약도 전혀 없다. 회사는 기약 없이 개점휴업 상태다.

집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일본 상품 불매 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日규탄 집회서 피켓 든 아이들 - 30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현저동에 있는 서대문형무소역사관에서 '일본 수출 규제 조치 규탄대회'가 열렸다. 이날 집회는 서울 서대문구를 포함해 52개 지방자치단체로 구성된 '일본 수출규제 공동대응 지방정부 연합'이 개최했다. 집회에 참가한 아이들이 일본 상품 불매 운동 동참을 촉구하는 피켓을 들고 있다. /장련성 기자
김씨는 "내 잘못으로 벌어진 일이라면 바로잡아보기라도 하겠는데, 정치 논리로 갑자기 벌어진 일이어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현실이 더 답답하고 힘들다"며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고객들이 출발 하루 전, 3일 전 취소해도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고 했다.

반일(反日) 불매운동의 여파는 일본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한국인에게도 타격을 주고 있다. 일본 여행업계, 그중에서도 패키지여행 전문인 영세 랜드사와 프리랜서 여행 가이드의 고통이 가장 크다. 개인적으로 조용히 다녀올 수 있는 자유 여행에 비해, 여러 사람이 뜻을 맞춰야 하고 소문이 나기 쉬운 패키지여행의 취소 비율이 더 높아서다. 한 랜드사 사장은 "10인 이상 단체 여행은 거의 전멸이라고 봐도 된다"고 했다.

국내에서 영업 중인 일본 여행 랜드사는 대략 70~80곳. 본지가 취재에 응한 랜드사 19곳에 문의한 결과 이 중 11곳이 지난 1개월 새 직원들을 무급 휴가를 보내거나 해고하는 등 "근무 인원을 축소했다"고 답했다. 직원 9명을 해고한 업체도 있었다. 나머지 8곳 중 4곳은 "직원 감축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랜드사와 계약해 일하는 여행 가이드도 생계가 막막하다. 가이드는 대부분 기본급이 따로 없고, '출장비' 명목으로 일당(日當)을 받는다. 1박(泊)당 2만엔(약 21만5000원) 안팎이다. 도쿄 지역 가이드 경력 18년 차 윤모(48)씨는 "매달 주택자금 대출금을 갚고 중학생 딸 교육비를 대려면 한 달에 10박은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윤씨의 다음 달 출장 일정은 단 하루다. 대목인 추석에도 예약이 한 건도 없다. 윤씨는 "이 나이에 다른 일을 새로 배우기도 쉽지 않아, 사태가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는데 쉽게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더 걱정"이라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친여 진영에선 이런 이들에 대한 걱정이 매국(賣國)이란 주장까지 나온다. 전우용 한국학중앙연구원 객원교수는 이달 18일 트위터에 "'우리 편 피해도 생기니 항복하자'는 역사상 모든 매국노의 한결같은 주장"이라고 썼다. 피해자들은 항변한다. 한 가이드는 "우리는 말 그대로 생계가 끊긴 상황인데, 이건 누굴 위한 희생이냐"며 "일본이 한 대 맞을 때 저희가 스물 다섯 대는 맞는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랜드사 사장은 "요즘은 내가 애초 일본어 공부를 시작한 것부터 잘못된 건 아닐까 생각한다"고 했다.

국내 항공사들도 타격을 입는다. 기종·취항지가 한정적인 저비용 항공사(LCC) 타격이 더 크다. 에어서울은 8월 인천~오사카 구간 편도 항공권을 1만원에 판매 중인데도 좌석이 남아 있다. 인천~오키나와 왕복 항공권은 성수기 요금 절반인 10만원, 인천~삿포로는 왕복 15만원 선이다. 이 항공사는 전체 운항 노선의 60% 이상이 일본이다. 에어부산도 대구~기타큐슈 구간 항공권을 편도 1만원에 팔았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당장 수익이 안 난다고 운항을 포기하면 나중에 운항권을 다시 받기 어렵기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적자 항공기를 띄우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일본 여행을 부추긴다'는 비난에 시달린다"고 했다.

일본 주요 언론도 한국의 불매운동을 보도하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30일 "출구가 보이지 않는 정부 간 대립이 경제, 문화, 스포츠 분야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고 했다. 요미우리신문도 "오래가지 않았던 한국의 과거 불매운동과 달리 이례적으로 장기화하는 양상을 띠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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