쉴 권리 준다며 야자 없애자… 아이들은 학원·독서실로

입력 2019.07.31 03:01

['좌파 교육감 10년'의 실험] [3] 학생인권조례
경기교육감, 2017년 학생 휴식권 보장한다며 야간자율학습 폐지
1인당 月평균 사교육비 7만원 증가, "학부모 부담만 늘었다" 지적

경기 성남의 A고 학생 대부분은 오후 5시쯤 정규 수업이 끝나면 학교를 떠난다. 교실은 텅 비지만 아이들은 그때 집에 가지 않는다. 학교 앞 분식점이나 편의점에서 '편도'(편의점 도시락)로 저녁을 때운 뒤 학원이나 독서실에 간다. 이 학교는 불과 3년 전만 해도 학생 80%가 학교에 남아 저녁을 먹고 야간자율학습(야자)을 했다.

A고의 이런 변화는 이재정 경기교육감이 학생인권조례의 '휴식권' 조항을 들어 2017년부터 야간자율학습을 폐지했기 때문이다. 학부모들은 반발했다. '대입 경쟁'은 그대로인데 교육감이 "쉬라"고 한다고 아이들이 쉴 수 있는 게 아니라서였다. 이 학교 한 학부모는 "학교에서 야자를 안 해도 결국 고교생이면 대입 준비를 해야 하지 않느냐"며 "독서실 갈 형편 못 되는 아이들 공부할 공간을 빼앗은 셈"이라고 말했다.야자 없는 학교와 편도 먹는 학생들 모습은 지난 10년간 진보·좌파 교육감들이 성급히 도입한 정책의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교육계에선 "아이들의 인권은 당연히 보호하고 존중해야 하지만, 현실과 괴리된 정책을 갑자기 도입해 오히려 학생들이 피해 보는 결과를 낳았다"는 얘기가 나온다.

야자 없애자 학원, 독서실

2010년 교육계에 등장한 진보·좌파 교육감들이 선거 때마다 내건 핵심 공약 중 하나가 '학생인권조례' 제정이다. 인권조례는 복장·두발의 자유, 휴대폰 강제 수거 금지, 체벌 금지 등이 주요 내용이다. 경기(2010년), 광주(2011년), 서울(2012년), 전북(2013년) 등 현재 전국 17개 시·도 중 네 곳에서 시행 중이다.

이재정 경기교육감은 2016년 기자간담회 때 "2017년부터 경기도 모든 학교에서 야자를 사실상 폐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발표 직후 학부모들은 "야자 없애면 학원 가고 독서실 가란 말이냐"고 크게 반발했다. 이 교육감은 "원하는 학생들은 야자 해도 된다"고 한발 물러섰지만, 동시에 학교에 공문을 보내 '석식 제공하는 학교들이 위생 사고 위험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학교 관계자들은 "사실상 '석식 주지 말라'는 지시로 받아들였다"고 했다. 결국 경기도에서 석식 주는 고교는 2016년 406곳에서 2017년 174곳으로 1년 만에 절반 넘게 줄었다. 학생들은 밖에서 저녁을 해결하고 학원이나 독서실로 가기 시작했다.

학부모들 "사교육비만 늘었다"

학부모 김모(54)씨는 "작년에 막내가 고3 올라가면서 갑자기 학교가 야자를 폐지해 독서실비로 월 25만원이 추가로 나가게 됐다"며 "외고 다닌 둘째보다 일반고 다닌 막내에게 사교육비가 더 많이 들었다"고 했다. 경기 분당의 한 일반고 앞엔 야자가 폐지된 이후 프리미엄 독서실이 3개나 새로 생겼다.

좌파 교육감들이 현실은 고려하지 않은 채 무작정 '야자 폐지' '9시 등교' 같은 인기 위주 정책을 추진해 되레 사교육비가 올라갔다는 지적도 나온다. 교육부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015년까지 24만원 초반대를 유지하다 2016년 25만6000원, 2017년 27만2000원, 2018년 29만1000원으로 최근 수년간 계속 오르고 있다. 공립고는 교육청 지침대로 석식·야자를 줄인 반면 특목고나 사립고는 여전히 야자와 석식을 제공해 "일반고와 특목고 격차만 늘린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교사들 "생활 지도 어려워" 호소

인권조례가 부른 또 다른 부작용이 교권 위축이다. 인권조례로 체벌이나 강압적 학교 문화가 줄어든 것은 긍정적 측면이지만, 대안 없이 인권만 강조되면서 교사들의 생활 지도가 어려워지고 교권이 추락했다는 것이다. 경기 한 고교 이모 교사는 최근 수업 시간에 떠드는 학생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다가 "아 씨, 졸○ 짜증 나"라는 말을 들었다. 이 교사가 "지금 싸가지 없이 선생님한테 욕한 거냐"고 묻자 해당 학생은 "나도 선생님이 싸가지 없다고 한 거 교육청에 신고하겠다"고 했다. 올 초 경기도의 한 교사는 등교 후 휴대폰을 제출해야 하는 교칙을 어긴 학생을 나무랐다가 "씨○, 너 따위가 선생이냐"는 욕설을 듣고 뺨까지 맞았다. 교육부에 따르면 교사가 학생에게 폭행당한 경우는 2013년 71건에서 2016년 89건, 지난해 165건으로 5년 새 두 배 넘게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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