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284] 나라 위기 때 꽃피운 덴마크 미술의 황금기

조선일보
  •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입력 2019.07.30 03:09

계단 주위에 한가롭게 모여서 주사위 놀이를 하는 소년들이 있다. 비록 맨발에 거리를 안방 삼아 놀고 있지만, 하나같이 정갈한 옷을 입고 고전 조각처럼 우아한 자세에 표정 또한 노는 얼굴이 아니라 인생을 논하는 듯 진지하다. 덴마크 화가 콘스탄틴 한센(Constantin Hansen·1804~1880)은 덴마크 왕립 미술 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다 회화로 전향한 뒤 오랜 기간 이탈리아에서 고전적 미술을 익히고 귀국한 이후 덴마크의 풍경과 역사, 북유럽 신화 등을 주제로 아카데믹 화풍의 그림을 주로 그렸다. 이 그림은 그의 작품 중 드물게 작은 풍속화에 속한다.

콘스탄틴 한센,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스보르궁 앞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는 소년들, 1834년, 캔버스에 유채, 61×5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콘스탄틴 한센,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안스보르궁 앞에서 주사위 놀이를 하는 소년들, 1834년, 캔버스에 유채, 61×50㎝, 파리 루브르 박물관 소장.
한센이 활동하던 시기, 19세기 전반은 덴마크 미술의 황금기라고 한다. 중세 이후 처음으로 덴마크 특유의 풍경과 일상생활을 담아내는 미술가가 대거 등장했던 것. 하지만 덴마크의 상황은 오히려 암흑기에 가까웠다. 수도인 코펜하겐은 1794년부터 연 두 해에 걸친 큰 화재로 크리스티안스보르궁이 전소하는 등 막대한 피해를 봤고, 1807년에는 나폴레옹 전쟁에 휘말려 영국 해군으로부터 대대적인 폭격을 당했다. 전쟁 여파로 덴마크는 부도를 선언할 지경이 되었으나 역설적이게도 국가적 위기는 개인들의 결속과 창의력을 낳았다.

한센은 전형적 고전 화풍 속에 덴마크적 요소를 부각했다. 건물의 기둥과 계단으로 이어진 정갈한 기하학적 형태에서는 웅장한 역사화의 배경이 떠오르지만, 창백한 듯 날카로운 조명은 북유럽 특유의 기후를 느끼게 해준다. 배경이 된 건물은 화재 이후 재건을 마친 직후의 크리스티안스보르궁이다. 화가는 큰 위기 앞에서도 결연한 그의 나라 덴마크를 보여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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