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현지 시각) 오후 러시아 모스크바 시청 앞 트베르스카야 거리.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크렘린 궁에서 500m가량 떨어진 이곳에서 시위대 수십 명이 폴리스라인을 사이에 두고 경찰과 대치했다. 이들은 "러시아에 자유를!" "푸틴 없는 러시아를!"이라고 외쳤다. 경찰이 "존경하는 시민 여러분, 해산하라"고 방송하자, 누군가 "존경하는 경찰관 여러분부터 해산하라"고 조롱했다. 결국 곤봉을 허리에 찬 경찰관들이 폴리스 라인 밖으로 뛰어나와 시위 참가자를 한 명씩 끌고 갔다.
이날 모스크바 도심 곳곳에서 함성과 비명이 뒤엉켰다. "공정 선거"를 외치며 거리에 나온 모스크바 시민 수천 명을 러시아 군경은 곤봉으로 진압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시민 약 3500명 중 1074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민간단체 집계로는 1373명이 체포됐다. 시위에 나선 사람 3명 가운데 1명이 철창에 갇힌 셈이다.
집회의 발단은 오는 9월 실시될 모스크바 시의회 선거를 둘러싼 갈등이다. 야권 성향 무소속 후보자들이 등록하려 하자, 선거 당국은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며 입후보를 거절했다. 이들이 출마하려면 지역구 유권자들의 지지 서명이 필요한데, 후보들이 제출한 서명 중 일부가 유효하지 못하다는 이유를 댔다. 무소속 후보들은 "정치 탄압"이라며 반발해 왔다.
오후 2시부터 시작된 시위는 곳곳에서 경찰과 충돌했다. 시위대는 "푸틴은 도둑놈" 등 구호를 외쳤다. 시위 현장에서 만난 직장인 안톤(33)씨는 "이번 시위는 좌·우파 이념에 관계없이 모스크바 선거 당국의 횡포를 규탄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피켓을 들거나 구호를 외치는 사람들을 끌어낸 뒤, 바닥에 내동댕이치고 얼굴과 어깨를 곤봉으로 가격했다. 러시아 민간 모니터링 단체 'OVD 인포'에 따르면 이날 취재진 18명이 체포됐다. 경찰은 시위를 생중계하는 독립 언론사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날 집회는 오후 10시쯤 끝났다. 무소속 후보 일랴 야신은 이날 저녁 트위터에 "동지들, 오늘 당신들은 스스로 영웅임을 보여줬다"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