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군용기의 독도 영공 침범과 관련해 주한 러시아대사관이 "러시아가 공식적으로 '깊은 유감을 표했다'는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의 발표는 사실이 아니다"라고 했다. 외국 대사관이 주재국 정부 발표를 '거짓'이라고 반박하는 건 전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러시아 국방부는 사건이 발생한 23일 언론 보도문을 통해 "국제법을 철저히 준수했다"며 영공 침범 사실을 부인했다. 러시아 군 사령관이 "한국 공군의 공중 난동"이라고 오히려 우리를 비난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그런데 윤 수석은 24일 브리핑에서 "러시아 정부가 기기 오작동으로 계획되지 않은 지역에 진입한 데 대해 깊은 유감을 표명했다"고 다른 말을 했다. 전날 러시아 대사관 차석무관(대령)이 우리 국방부에 이런 입장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윤 수석 발표는 5시간여 뒤 러시아 정부가 '영공 침범은 없었다'는 내용으로 우리 정부에 보낸 공식 문서가 공개되면서 완전히 뒤집혔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나.
러시아 무관의 메시지가 명확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만약 그렇다면 외교 경로로 정확한 입장을 확인·검증하는 게 순서다. 우리 국방부가 무관의 발언을 당일 공개하지 않은 것도 이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청와대가 이런 기본을 무시하고 확대 해석해 덜컥 공개했다가 사달이 벌어진 것이다. 윤 수석은 "무관 언급이 러시아의 공식 입장이고 국방부 보도문은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했다. 국방부 보도문은 국방 장관의 입장이다. 그것과 대사관에 파견된 영관급 무관의 말 중 어느 쪽에 무게를 둬야 하는지는 상식에 속한다.
윤 수석이 왜 그렇게 서둘렀는지는 짐작이 간다. 반일(反日)로 재미를 보고 있고, 그래서 일본에 화력을 집중시켜야 하는데 러시아와 중국이 끼어들면 전선이 흐트러진다. 그래서 독도 영공이 침범당한 사태를 축소하려고 조급증을 낸 것이다. 이번엔 청와대가 망신을 당한 정도지만 정권의 이해관계에 따라 안보 문제를 분식하다간 나라가 큰 화를 입게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