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이 두려워" 정신질환 산재, 1년새 60% 증가

조선일보
입력 2019.07.25 03:00

2017년 126명→작년 201명 인정
보상 원하는 직장인들 신청 늘고 정부 승인율도 75%로 급증

한 공공기관 팀장급인 A씨는 지난 2017년 말부터 정신과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연초에 갑자기 부서가 바뀐 뒤 새 동료들로부터 따돌림을 당했기 때문이다. 새로 맡은 업무에 서툰 A씨가 실수를 하자 동료 직원이 "사장님 학교 후배라고 (일도 안 하고) 권력질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회사가 내부 비리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는 일이 있었는데, A씨가 '내부 고발자'라는 소문이 돌았다. 동료들의 따돌림이 심해졌다. 지난해 2월 정신건강 심리검사를 받았더니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피해 의식이 크다'는 소견이 나왔다. 그는 결국 '우울병 장애'로 산재 신청을 했고 그해 8월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동료들과의 마찰과 내부고발자라는 의심을 받는 등의 과정에서 겪었던 일련의 상실감, 배신감, 불안 등이 A씨가 정신병적 상태에 이르는 데 중요한 원인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였다"며 "A씨의 병과 업무 간 인과관계가 인정돼 산재 판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지난해 A씨처럼 정신 질병으로 산업재해를 인정받은 근로자 수가 전년보다 60% 늘어난 것으로 집계됐다. 직장에서 업무를 하다 우울증 등 정신적 질병을 얻어 정부로부터 산업재해 보상을 받은 근로자들이 크게 증가했다.

정신질환 산재 인정 5년 전의 4배

24일 고용노동부 산하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지난해 정신 질병으로 산재를 신청해 승인받은 근로자는 201명으로 처음으로 200명을 넘었다. 전년(126명)보다 1.6배 늘었다. 5년 전에 비해서는 무려 3.8배나 늘었다. 정신 질환 산재 신청자 수가 늘어난 데다, 문재인 정부 들어 승인율(신청 대비 승인 비율)이 높아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지난해 승인율은 75%에 달했다. 2017년에는 59%, 2016년에는 46%, 2015년에는 38%에 그쳤었다. 정신 질환은 절단 사고, 추락과 같은 사고 재해와 달리 원인을 명확하게 특정하기 어려워 산재 인정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

2018년 산재 인정 받은 정신질환 질병명 그래프
그래픽=김현국, 권혜인

정신 질환에 대한 인식이 옛날보다 개선된 측면도 있고, 직장 내에서의 권리 의식이 커진 것도 신청이 늘어난 요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정당하게 보상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커졌다는 것이다. 근로복지공단 관계자는 "최근 '미투 운동'이 확산하면서 직장 내 성폭력·성희롱으로 인해 정신 질병 진단을 받은 근로자들의 신청이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엔 의학적 관점을 보다 중요하게 여겼다면, 최근엔 이것 외에도 회사 내 다양한 상관관계를 폭넓게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재 인정을 받으면 치료비뿐 아니라 평균 임금의 70%를 '휴업 급여'로 받을 수 있다. 산재 인정을 받은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유족이 보험금을 수급한다.

'직장 내 괴롭힘' 정신 질환도 인정

전문가들은 앞으로 정신 질환으로 산재 인정을 받는 근로자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 16일부터 '직장 내 괴롭힘 방지법'이 시행되면서, 법률에 직장 내 괴롭힘에 따른 정신 질환도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는 근거가 생겼기 때문이다. 현행 산재보험법은 업무상 재해 인정 기준을 명시하고 있는데, 지난 1월 '직장 내 괴롭힘 등으로 인한 업무상 정신적 스트레스가 원인이 되어 발생한 질병'이 새로 추가됐다. 근로자의 권리 구제를 폭넓게 해준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산재 신청이 무분별하게 남발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권준수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정부가 합리적인 기준 등을 들어 무분별한 신청이 남발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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