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로 보이세요? 누군가는 그냥 버리고, 누군가는 '돈'으로 씁니다

입력 2019.07.23 03:00

[더 나은 미래 위해, 기자가 해봤다] 쓰레기마트에서 쓰레기로 장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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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쓰레기마트’ 손님들이 자판기에서 페트병과 캔을 포인트로 바꾸고 있다. ②‘벗겼쓰존’에서 페트병의 라벨을 제거하는 모습. ③페트병 51개와 캔 67개로 구매한 물건들./장은주 C영상미디어 객원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수상한 마트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쓰레기마트'. 이곳에선 빈 페트병과 캔이 곧 '돈'이다. 마트 안에 있는 자판기에 페트병과 캔을 넣으면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로 전환된다. 크기와 종류 상관없이 페트병은 10포인트, 캔은 15포인트다. 각각 10원, 15원에 해당한다.

쓰레기마트는 페트병·캔 수거 자판기 '네프론'을 개발한 소셜벤처 '수퍼빈'이 세계자연기금(WWF) 한국지부, 한국코카콜라, TBWA코리아와 협력해 오는 9월 5일까지 운영하는 팝업 스토어다. 사람들에게 '쓰레기도 돈이 된다'는 것을 몸으로 경험하는 기회를 제공해 자원 순환의 가치를 깨닫게 하는 것이 목표다. 판매 제품도 모두 환경을 고려해 구성됐다. 대나무로 만든 칫솔, 깨끗하게 세탁한 중고 의류, 페트병 재활용 섬유로 만든 가방, 천에 밀랍을 덧입혀 만든 친환경 랩 등이다. 모두 탐나는 물건이다. 그래서 직접 페트병과 캔을 모아 쓰레기마트에서 쇼핑을 해보기로 했다. 나흘 동안 퇴근길 '플로깅(조깅하며 쓰레기 줍기)'을 하며 모은 페트병과 캔을 싸들고 지난 17일 쓰레기마트를 방문했다.

길에서 주운 페트병·캔 118개… 돈으로 바꾸니 1515원

매장 안쪽으로 들어가니 페트병과 캔을 포인트로 바꿀 수 있는 자판기가 보였다. 김수지 수퍼빈 매니저가 다가와 "페트병 뚜껑과 라벨을 제거해달라"며 자판기 옆 '벗겼쓰존'으로 안내했다. 벗겼쓰존에는 뚜껑을 모으는 큰 병과 가위, 날이 C자형인 칼이 비치돼 있었다. 모아온 페트병들을 꺼내 하나하나 뚜껑을 제거하고 칼과 가위를 동원해 라벨을 떼기 시작했다. 한 번에 깨끗하게 제거되는 라벨이 있는가 하면, 잘 뜯어지지 않는 데다 접착제 흔적이 지저분하게 남는 것도 있어 진땀을 뺐다.

제대로 제거되지 않은 라벨은 재활용 공정에서 '이물질'로 간주돼 페트병의 자원 가치를 떨어뜨린다. 이에 환경부는 페트병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지난 4월 '포장재 재질·구조개선 등에 관한 기준' 개정안에 ▲소비자가 분리배출 시 라벨을 손쉽게 제거할 수 있도록 절취선 등을 도입할 것 ▲재활용 세척공정에서 라벨이 잘 제거되도록 수산화나트륨 세척수에서 분리되는 열알칼리성 접착제를 소량만 사용할 것 등의 내용을 포함시켰다. 국내 생산 페트병의 71.5%가 잘 떨어지지 않는 일반 접착제를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라벨과 씨름하는 사이 추리닝 차림의 20대 여성이 페트병 여러 개가 든 비닐봉지를 들고 매장으로 들어왔다. 미리 뚜껑과 라벨을 제거한 페트병을 자판기에 하나씩 넣고 포인트를 적립한 뒤 유유히 매장 밖으로 사라졌다. 김수지 매니저는 "꾸준히 페트병과 캔을 모아오는 손님이 많다"면서 "손님들이 '이제는 페트병이나 캔이 돈으로 보여서 함부로 못 버리겠더라'고 하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뿌듯하다"며 웃었다.

버려진 페트병과 캔이 돈으로 보인다는 말에 공감이 갔다. 쓰레기마트에서 장보기 위해 플로깅을 하는 동안 페트병이 10원짜리 화폐로 보였기 때문이다. 길에 나뒹구는 페트병과 캔을 보면 반가우면서도 이렇게 '돈'이 함부로 버려지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불편했다. 페트병과 캔이 일반쓰레기와 함께 종량제봉투에 담겨 있는 광경도 자주 관찰됐다. 환경부가 2016~2017년 실시한 '제5차 전국 폐기물 통계 조사'에 따르면 종량제봉투 폐기물의 53.7%가 분리배출해서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 플라스틱, 금속 등이다. 종량제봉투에 담긴 재활용 쓰레기들은 소각되거나 매립돼 자원으로 재생될 기회를 영영 잃는다. 김정빈 수퍼빈 대표는 "예를 들어 알루미늄 캔을 자원으로 재생하면 원석인 보크사이트에서 알루미늄을 채굴할 때보다 30% 가까이 에너지 사용량을 줄일 수 있다"면서 "다시 활용할 수 있는 자원이 땅에 묻히거나 불에 타 없어지는 것은 무척 안타까운 일"이라고 했다.

페트병 뚜껑과 라벨 제거 작업을 마치고 드디어 자판기 앞에 섰다. 자판기 모니터에 뜬 '시작하기' 버튼을 누르자 동그란 투입구 안쪽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페트병 하나를 넣었다. 자판기가 알아서 페트병을 인식해 2초 만에 '10포인트가 적립된다'는 메시지가 떴다. 연속으로 포인트를 적립할 수 있어서 페트병 10개를 잇달아 투입했다. 포인트는 휴대전화 번호를 입력하면 적립된다. 중간 중간 다른 손님들에게 차례를 양보해가며 준비해온 페트병 51개와 캔 67개를 몽땅 자판기에 넣었다. 총 1515포인트. 1515원을 벌었다. 길에 버려져 매립장이나 소각장으로 갈 뻔했던 페트병과 캔을 재활용하는 동시에 돈도 벌었다는 게 신기했다.

쓰레기 가치 높이려면 대중 인식부터 산업 구조까지 바뀌어야

이제 쇼핑 타임이다. 막상 1515원으로 살 만한 물건이 많지 않았다. 종이로 만든 쓰레기통이나 친환경 랩 등 탐나는 제품은 모두 1만원을 넘었다. 모자란 금액을 카드로 결제해도 되지만, 이번엔 오롯이 페트병과 캔으로 모은 돈으로만 쇼핑하기로 했다. 김수지 매니저가 "포인트로만 살 수 있는 품목들도 있는데, 10~500포인트 수준이니 그 품목들을 주로 공략해보시라"고 추천했다.

대나무 칫솔이 500포인트, 펭귄 그림이 그려진 재생 플라스틱 소재 장바구니는 30포인트였다. 각각 두 개씩 집었다. 포장 없이 벌크로 판매하는 돌멩이 모양 초콜릿에도 손이 갔다. 초콜릿은 한 컵에 30포인트. 혹시 몰라 챙겨간 유리병에 두 컵 분량이 딱 알맞게 담겼다. 이렇게 해서 총 1120포인트를 소비했다.

실제 재활용 시장에서 페트병 51개와 캔 67개로는 초콜릿 한 쪽도 살 수 없다. 자원순환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압축한 페트병은 1㎏당 252원, 알루미늄 캔은 1099원에 거래된다. 김정빈 대표는 "쓰레기도 재활용만 잘하면 가치 있는 자원이라는 인식을 정착시키기 위한 투자 차원에서 높은 가격에 페트병과 캔을 수거하고 있다"면서 "인식이 바뀌면 쓰레기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변할 것이라 기대한다"고 했다.

쓰레기의 가치를 더 높이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가 많다. 전문가들은 제품 생산 단계에서부터 재활용 효율을 고려해 폐기된 제품이 다시 자원이 되는 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한국포장재재활용공제조합이 2015년 페트병 15만6401개를 조사한 결과 15만844개(96.4%)가 재활용이 어려운 것으로 나타났다. 뚜껑·라벨 등 부자재에 페트 외 다른 재질이 섞여 있거나 내용물 보호, 마케팅 등의 이유로 색깔 있는 페트를 사용한 탓이다. 페트병 제조 단계부터 색을 넣거나 다른 소재를 섞지 않아야 하는 이유다.

재활용 산업의 질을 높이는 것 또한 중대한 과제다. 정부도 지난해 9월 '제1차 자원순환기본계획'을 발표하며 '영세업체 중심 재활용 시장의 안정화 체계 구축과 재활용 산업 지원 확대'를 세부 추진 과제로 내세웠다. 김정빈 대표는 "우리가 깨끗한 페트병과 캔을 철저하게 분리 수거해 재활용업체에 갖다줘도 업체에서 이를 불순물 섞인 수거물과 한꺼번에 처리하는 게 현재 상황"이라며 "수퍼빈이 수거한 페트병과 캔만을 취급하는 재활용 공정 라인을 확보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했다.

쓰레기마트에서 첫 쇼핑을 마치고서 '연트럴파크'로 불리는 경의선숲길을 잠시 걸었다. 곳곳에 빈 페트병과 캔이 눈에 띄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10원, 15원' 계산하며 페트병과 캔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고 있었다. 당분간 퇴근길 플로깅은 계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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