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헌 살롱] [1203] 五派 혼합의 한국

입력 2019.07.22 03:14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조용헌 건국대 석좌교수·문화콘텐츠학
근자에 읽은 책 가운데 '한국사람 만들기'(함재봉·아산서원) 1·2권이 인상적이었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탐구한 책이다. '정체성'. 이거 말은 쉽게 하지만 실제로는 알기 어렵다. 자기 정체성을 안다는 것은 반도(半道·50%)를 깨친 셈이다. 이 책에선 '다섯 종류의 한국 사람'이 있다고 주장한다.

첫째는 친중 위정척사파다. 중국에서 유래한 주자학적 세계관을 신봉하는 집단이다. 이 파는 19세기 말의 혼란기에 조선에 상륙했던 서양과 일본을 배척한다. 조선 말기 선비들은 천주교와 서구 열강, 일본의 제도와 사상을 '삿된 세력'으로 규정하였다. 단 중국은 예외였다. 대국으로 신봉했다. 최근에 사드 사태를 겪으면서 이게 어느 정도 깨졌다.

둘째는 친일 개화파다. 명치유신 이후의 발전된 일본을 따라가야 조선도 발전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조선이 500년 동안 추종했던 중국은 별 볼일 없는 후진적인 국가로 인식하였다. 일본이 선진국이다. 일본식 부국강병을 따라가야만 조선이 잘된다고 보았다. 일본이 개발한 문명개화의 방식을 그대로 받아들이고자 하였다. 삼성 이병철의 반도체 산업 시작도 친일개화파의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병 주고 약 주는 게 일본이다.

셋째는 친미 기독교파다. 일본이 조선을 식민지로 삼자 많은 식자층은 미국을 추종하였다. 그 매개체는 기독교였다. 일제강점기에 기독교를 믿는다는 것은 일본을 혐오하고 미국을 좋아한다는 의미였다. 유교를 버리고 기독교를 믿어야만 나라가 잘된다고 믿었다. 해방 이후에는 기독교를 매개로 하여 미국에 유학을 갔다 온 인사들이 한국의 주류사회를 형성하였다. 대학과 학계, 병원, 방송국, 문화계 전반이 친미 기독교파로 볼 수 있다.

넷째는 친소 공산주의파다. 1917년 볼셰비키 혁명으로 탄생한 소련은 식민지 국가의 지식인들에게 유토피아처럼 보였다. 양반, 상놈 없애고 지주들 땅 뺏어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자는 공산주의 이념은 조선의 식자층을 매료시켰다. 유교의 선비정신과 일정 부분 맞아떨어지는 게 있어서 영남 양반 집안 후손들 상당수도 이쪽으로 갔다. 그뿐만 아니라 소련은 조선의 공산주의자들에게 돈을 대주면서 조선의 독립과 조선 소비에트 건설을 지원하였다.

다섯째가 인종적 민족주의파다. 단군과 고조선의 역사, '환단고기'를 좋아하는 파다. '재야 사학'의 멤버들도 이 범주에 속한다. 한국인의 정체성은 어느 한 가닥이 아니다. 5개 가닥이 밧줄처럼 서로 꼬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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