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미 대통령이 한·일 갈등과 관련해 "양국이 원한다면 내가 (관여)할 것이다. 두 정상이 나를 필요로 하면 거기에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이 무역과 관련해 (일본과) 많은 마찰이 있다며 나한테 관여할 수 있는지 물어왔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이다. 청와대도 이를 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개입 가능성을 처음으로 언급하면서도 '양국의 요청'을 전제조건으로 내건 것은 당장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보인다. 국무부도 "우리는 '독려'(encourage)하는 것 이외에 '중재'(mediate)를 할 계획은 없다"며 "양국이 스스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미측 언급처럼 한·일이 외교적으로 푸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이미 그럴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고 있다. 양국 모두 국내 정치를 앞세우다 '양보=항복'이라며 스스로 퇴로를 끊어버려 물러설 수 없는 상황에 몰려 있다. 아베 정권은 '화이트리스트(전략물자 수출 절차 간소화 국가 목록)'에서 한국을 제외할 수순을 밟고 있고, 우리 청와대와 여당은 '일전불사'를 외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전문가가 "브레이크 없이 마주 보고 달리는 한·일을 멈춰 세우려면 미국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본다. 볼턴 백악관 보좌관이 이번 주 한·일을 잇따라 방문하는 것도 당장 중재를 하진 않더라도 '더 이상 사태 악화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일 가능성이 있다.

문제는 실제 미국의 개입이 본격화될 경우에 대비한 우리 정부의 외교적 준비가 돼 있느냐는 점이다. 미국이 공들이는 인도·태평양 구상, 대북 제재, 반(反)화웨이 전선에 일본은 '트럼프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받으면서까지 적극 동참했지만, 한국은 그러지 않았다. 미국 조야에는 "한국은 아쉬울 때만 미국을 찾는다"는 말도 나온다고 한다. 한·미·일 3각 안보 협력은 북한과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미국의 동북아 전략 핵심이다. 일본의 수출 규제가 그 협력 체제를 흔들고 있다는 우려가 미국을 움직일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관건이다. 우리가 한·일 정보협정을 깰 수 있다는 식의 자해 공갈은 역효과만 낼 뿐이다. 냉철하고 정교한 외교 전략이 긴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