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여야 5당 대표 회동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과 엄중한 경제 상황에 대한 대책으로 "추가경정예산의 빠른 처리가 필요하다"며 '추경 통과'를 열 번 넘게 말했다고 한다. 하지만 한국당 등 야당 대표들은 소득 주도 성장 정책의 폐기를 주장하며 국방부 장관의 해임건의안 처리가 우선돼야 한다고 했다. "서로 한 발씩 양보하자"는 중재 목소리도 있었지만 추경 처리는 결국 합의되지 못했다. 문 대통령은 공동 발표문에 추경 처리가 들어가지 않았다는 점 때문에 "회담에 만족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대통령은 추경 처리를 일본 경제 보복 대책을 숙의하는 이날 회동의 핵심 안건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야는 19일 국회에서 추경안을 놓고 다시 협상했지만 이견이 좁혀지지 않아 이번 임시국회 처리에 실패했다. 국회에 제출된 추경안이 사상 처음으로 처리가 안 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정부가 당초 국회에 제출한 추경 규모는 6조7000억원이다. 본 예산 470조원의 2%가 안 된다. 2년 동안 퍼부은 일자리 예산 54조원이 모래 위의 물처럼 증발해 버렸다. 그 10분의 1 규모 돈을 더 보탠다고 시름시름 앓는 경제가 갑자기 살아나겠나. 대통령은 추경의 필요성을 강조하면서 일본이 규제 대상으로 꼽은 반도체 산업 핵심부품 육성사업 대책 예산도 국회가 조속히 확보해달라고 부탁했다. 국무총리는 최근 일본의 경제 보복에 따른 추경 증액분을 1200억원 수준이라고 했는데 민주당 정책조정회의에서 3000억원으로 늘었고, 이후 국회 예결위 회의에선 8000억원이 됐다. 주먹구구가 따로 없다. 매년 영업이익이 수십조원인 반도체 기업이 그동안 이 정도 돈이 없어서 일본 기업에 매달려 왔겠나.

추경 처리를 석 달째 결사적으로 막아서는 야당 태도도 이해하기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대통령과 여야 5당 대표 회동은 한국당의 제안으로 열렸고, 그 자리에서 일본의 경제 보복에 맞서 여야가 초당적 협력을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대통령이 열 번 넘게 독촉한 추경 처리를 야당이 거부한 것이다. 야당은 국방장관 해임안 처리를 하지 않으면 추경은 없다고 했는데 두 사안을 굳이 연계해야 하는지도 의문이다.

한은이 성장률 전망치를 석 달 만에 0.3%포인트를 깎아내려야 할 정도로 경제가 가라앉고 있는 가운데 일본 보복 조치의 먹구름까지 덮쳐오고 있다. 국정 전반의 운영 기조를 크게 손보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비상한 상황이다. 6조원짜리 추경 하나를 놓고 대통령과 야당이 신경전을 벌일 정도로 지금의 나라 사정이 한가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