튀는 졸업사진, 잘못 찍으면 동네북 되는데… 교사들 노심초사

조선일보
입력 2019.07.20 03:00

[아무튼, 주말] 이색 졸업사진 찍기의 부작용


경기도 의정부고 남학생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출연자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 / 인터넷 캡처
경기도 의정부고 남학생들이 오디션 프로그램 ‘프로듀스 101’ 출연자의 모습을 흉내 내고 있다. / 인터넷 캡처
#1. "나눠준 것 내일까지 써 오도록. 어떤 분장으로 어떻게 찍고 싶은지, 뭘 따라 한 건지 최대한 구체적으로 써야 한다." 지난 6월 경기도 고양시 A고등학교 종례시간. 담임 교사가 졸업사진 계획서를 학생들에게 나눠줬다. 계획서에는 반과 이름을 적는 칸, 사진 내용을 적는 칸이 있었다. 이 담임 교사는 "다른 학교에 사회적 논란으로 번지는 졸업사진이 많아 매년 계획서를 받고 있다"고 했다.

#2. 강원도 춘천시 B고등학교 이모(18)군의 올해 졸업사진 계획을 담임 교사가 반려했다. 학생이 문재인 대통령을 흉내 내려 했기 때문이다. 이군은 "대화를 통해 수위를 조율할 수 있었을 텐데, 선생님이 일방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으니 절대 안 된다'고 했다"며 "3년간 기다렸는데, 찍고 싶은 사진을 못 찍어 아쉽다"고 했다. 10년째 이색 졸업사진을 찍고 있는 경기도 의정부고등학교에서도 올해 정치 관련 분장을 한 학생은 없었다.

뻣뻣하고 어색한 미소를 띤 졸업사진은 옛날 일이 됐다. 지금 졸업사진은 학생이 개성을 뽐내는 수단 중 하나. 더 튀고, 남달라야 한다. 주로 한 해 동안 화제 됐던 인물을 흉내 내는데, 익살과 열정이 넘친다. 한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를 따라 한다며 노란색 머리를 위해 헤어스프레이를 뿌리고 빨간 넥타이와 검은 정장을 입는다. 인물뿐 아니라 나이키 등 유명 브랜드의 로고를 표현하려고 온몸 색칠도 불사한다.

그러나 교사는 학생의 열정만큼이나 불안하다. 잘못 찍은 졸업사진 한 장으로 전 국민의 비난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르치는 학생에게 악플이 달리고, 자칫하다간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할 수도 있다. A고등학교가 사전에 학생들에게 계획서를 받고, 교감이 주재 회의를 통해 최종 승인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지난해 7월 서울 양천구의 한 고등학교 졸업사진 촬영 날. 한 학생이 긴 머리 가발에 빨간 니트를 걸치고 등장했다. 당시 성추행 피해로 논란이 됐던 유명 유튜버 양예원씨 모방 의상이었다. A군의 사진은 인터넷상에서 빠르게 퍼졌다. 사람들은 "재판 중인 사건의 피해자를 막무가내로 조롱해도 되느냐"고 학교에 항의 전화를 넣었다. 결국 이틀 만에 학교장과 A군은 학교 홈페이지에 사과문을 올렸다.

이색 졸업사진의 원조 격인 의정부고는 7월이 되면 관련 항의 전화, 민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한다고 한다. 이에 몇 년 전 학교는 이런 퍼포먼스를 없애려 했지만, 학생들이 졸업사진을 찍지 않겠다며 버텼다. 이야기가 외부로 새어나갔고 소셜미디어에는 "학생들 표현의 자유를 인정해줘라"는 의견이 올라왔다. 경기도교육청에도 관련 민원이 다수 접수됐다고 한다. 결국 학교 측은 정치 인물, 선정성 등 논란을 불러일으킬 만한 소재가 아니면 허용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교사와 학생들은 "신종 축제가 생긴 만큼, 기존 방식으로는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다"고 했다. 서로 만족하게 할 새 방식이 필요하다는 의미였다. 권대봉 고려대 교육학과 명예교수는 "학생들이 토론을 통해 자체 기준을 먼저 정하고 교사는 최종 승인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학생들만 이용하는 인터넷 익명 게시판 같은 곳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게 하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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