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요시다 쇼인과 토착 왜구

조선일보
입력 2019.07.19 03:11

요시다 쇼인(吉田松陰·1830~1859)은 일본의 무사 정권인 막부의 요인 암살을 시도하다 좌절돼 서른에 처형당할 때까지 아흔 넘는 제자를 길러냈다.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다. 막부 타도의 선봉 다카스기 신사쿠,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 일본 육군의 아버지 야마가타 아리토모, 조선 초대 총독 데라우치 마사타케, 한·일 병합 당시 총리 가쓰라 다로 등이다. 그의 교육은 일본의 부국강병에는 기여했지만, 조선 침략 이데올로기의 원형을 제공했다.

▶'정부 관계자'라는 사람이 그제 외신 기자 간담회에서 요시다 쇼인을 입에 올렸다. 그는 "요시다 쇼인과 다카스기 신사쿠가 살아있다면 한·일 간 미래 지향적 협력에 대한 나의 평가에 동의할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했다. 아베 총리의 마음을 풀어보려고 아베가 가장 존경한다는 인물들을 거론했는지는 몰라도 역사적 맥락을 전혀 무시한 말이다. 그들은 일본이 열강의 침략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조선을 식민지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른바 '정한론(征韓論)'이다. 그들이 살아있다면 아베 총리에게 "백기 들고 항복할 때까지 한국을 더 혼내라"고 했을 것이다. 요시다의 유적이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다고 하자 우리 정부는 기를 쓰고 막으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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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딸 다혜씨가 졸업한 고쿠시칸(國士館)대학은 일본 우익 세력이 세웠다. 학교 설립 이념에는 '요시다 쇼인의 정신을 모범으로 삼아 심신을 단련하고…'라고 돼 있다. 교가에도 요시다 쇼인이 등장하고, 학교 상징인 빨간 단풍잎도 그의 일편단심을 연상해 채택했다고 한다. 친일 청산을 부르짖는 대통령의 딸이 이런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화제가 됐다.

▶정부 관계자가 '삿초(薩長) 동맹' 운운한 것도 귀를 의심하게 한다. 앙숙 관계이던 사쓰마(薩摩)번과 조슈(長州)번이 동맹을 맺어 막부를 타도하고 메이지 유신을 일궈낸 것처럼, 한·일 양국도 손을 잡자는 뜻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동맹은 공통 목표가 있어야 한다. 한·미·일 정상회담 때 아베 총리 면전에서 "일본은 우리 동맹이 아니다"라고 면박을 준 사람이 다름 아닌 문 대통령이다.

▶청와대와 여당은 강제징용 판결을 둘러싼 정부의 허술한 대응을 걱정하는 소리만 해도 '친일파' 딱지를 붙이고 있다. 요즘은 '토착 왜구'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었다. 정부 관계자의 요시다 쇼인, 삿초 동맹 관련 발언보다 더 굴욕적이고 토착 왜구 같은 발언이 어디 있을까. "알고 보니 토착 왜구는 정권 내부에 있었다"는 말이 나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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