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 체크] 정부, '일본의 수출 규제' WTO에 제소하겠다는데…

조선일보
입력 2019.07.17 03:00

[일본의 경제보복]
23~24일 일반이사회 - 164개 회원국의 총회, 철회 끌어낼 자리아냐
'식물 상태'인 최종심 - 상소위원 7명중 올 연말 1명만 남아 기능 마비

"WTO(세계무역기구) 제소를 포함한 외교적 대응 방안을 적극 강구해 나가겠다."

일본의 수출 규제에 대해 우리 정부가 내놓은 사실상 유일한 전략은 WTO로 이 문제를 가져가는 것이다. 청와대는 지난 4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에서 이런 결론을 내렸다. WTO 일반 이사회에 일본의 수출 규제를 의제로 상정하고, 분쟁 해결 기구 제소 등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WTO에서 일본이 상당한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입장이지만, 통상 전문가들의 견해는 다르다. 시일도 오래 걸리고 판정이 나오기도 어려워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WTO를 실질적인 대책인 것처럼 말하는 것은 국내 정치용 수사(修辭)일 뿐"(최원목 이화여대 교수)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WTO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짚어본다.

①WTO 일반 이사회는 164개국 대사 참석, 의사 결정 어려워

정부는 지난 8~9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WTO 상품무역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의 부당함을 지적하고, 조속한 철회를 요구한 데 이어 오는 23~24일 WTO 일반 이사회에서 다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정부는 "WTO 일반 이사회는 장관급 각료회의를 제외하고는 WTO 내 최고 의사 결정 기구에 해당한다"며 "일본 조치의 문제점에 대한 회원국들의 이해를 높이고, 공감대를 확보하는 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WTO 분쟁 해결 절차
정부 발표대로라면 WTO 회원국들이 일본의 부당한 조치를 이해하고 우리 입장을 지지해 줄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이지만 현실은 다르다. WTO 일반 이사회는 164개 전체 회원국의 대사 등이 참석하는 회의로, 사실상 '총회' 성격이어서 차기 이사회 개최 시기 등 일반 사항을 논의할 뿐, 민감한 양국 간 분쟁에 대해 분명한 입장을 밝히기 어려운 구조다.

정인교 인하대 교수는 "국제사회에 일본 측 조치의 부당성을 호소한다는 의미는 있겠지만, 일본과의 경제 관계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다른 국가들이 압도적으로 한국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며 "일본에 규제 조치 철회 등을 강제할 구속력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 한계는 인식하고 있다. 정경록 산업통상자원부 세계무역기구 과장은 "164개 회원국 전체가 동의하는 의사 결정을 하는 일은 거의 없고, 회원국들이 (양국 분쟁에서)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다"면서 "전체 회원국을 대상으로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설명하고, 공감대를 조성한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②WTO 상소 기구 '식물' 상태

정부는 WTO 분쟁 해결 절차에 따른 제소도 검토 중이다. 그러나 WTO 제소 역시 절차가 오래 걸릴 뿐 아니라 최종심인 2심을 맡는 상소 기구가 사실상 무력화된 상태여서 실효성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WTO 제소에 매달리는 사이 일본의 수출 규제 문제가 더욱 악화돼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산업부에 따르면 WTO 분쟁은 제소국이 협의를 요청하면 패널이 설치돼 심리하며, 1심 판정이 나올 때까지 대략 12개월이 걸린다. 분쟁 당사국 가운데 한 나라가 판정에 불복해 상소하면 상소 기구로 넘어간다. 이 과정까지 대개 몇 년 걸린다. 한·일 간 후쿠시마 수산물 분쟁도 최종 판정까지 4년이 걸렸다.

더 큰 문제는 WTO 상소 기구가 '식물' 상태에 빠졌다는 점이다. WTO 분쟁 해결 기구의 상소위원 정원은 7명이다. 이 가운데 임의로 선출한 3명의 상소위원이 2심을 진행한다.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지난 2016년 11월 상소위원에 선임됐지만, 2017년 7월 통상교섭본부장으로 발탁되면서 사임했다. 현재 미국·인도·중국 출신 상소위원 3명만 남은 상태다. 임기는 4년으로 1회 연임할 수 있는데 이미 한 차례 연임한 미국과 인도 출신 위원의 임기는 오는 12월 만료된다. 새로운 상소위원을 임명해야 하지만 WTO 체제하의 다자(多者) 무역주의 대신 힘의 우위를 바탕으로 한 양자 협의를 선호하는 미국이 강하게 반대하고 있어 추가 임명이 불투명한 상태다. 결국 연말이면 상소위원 1명만 남게 돼 2심 절차를 진행할 수 없게 되고, 후임 상소위원은 언제 임명될지 모를 상황이 된다.

안덕근 서울대 교수는 "WTO 제소는 소송 기간이 길고, 상소 기구가 작동을 못 할 가능성이 커 자칫 분쟁이 영구 미제로 남을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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