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최남단 태즈메이니아섬엔 울타리가 없다. 방문객이 알아서 동물을 찾아다녀야 한다. 동물들이 자리를 비웠다면, 그냥 그런 것이다. '태즈메이니아데블 언주(Tasmanian Devil UnZoo)'란 이름이 붙은 이곳은 동물원이자 동물원이 아닌, 기이한 공간이었다. 기존 동물원(zoo)이 동물을 가두고 사람이 지켜보게 하는 방식이라면, 이곳은 동물이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사람이 이들을 찾으러 다녔다. 때로는 동물이 우리를 구경하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동물원 입구에 큼지막하게 적힌 문구는 이렇다. '누가 누구를 보고 있을까(Who's watching who)?'

호주는 광활한 자연과 친환경 관광, 특히 에코 투어(생태 관광)로 유명하다. 나는 한국도 에코 투어 성지(聖地)로 도약할 잠재력을 품고 있다고 믿는다. 60년 넘게 사람 손길을 피해온, 휴전선 주변 비무장지대(DMZ)가 있어서다. DMZ 활용법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지난달 호주 전문가들을 찾아갔다.

◇"망가뜨리는 건 순간, 복원은 수십 년"

필립섬은 멜버른에서 남동쪽으로 차로 2시간 더 달리면 나온다. 멸종 위기종인 '꼬마 펭귄(쇠푸른펭귄)'의 서식지다. 낮 동안 바다에서 사냥한 펭귄 무리가 해 질 무렵 수백 마리씩 해변으로 돌아와 둥지로 돌아가는 풍경을 미리 정해진 데크에서 구경했다. 장관이었다.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에 올리면 큰 인기를 끌 법했다. 하지만 누구도 스마트폰을 꺼내지 않았다. 펭귄 시력이 인공 불빛에 민감해 사진 촬영은 절대로 안 된다고 여러 차례 경고받은 터였다.

소음 금지, 사진 촬영도 금지 - 호주 남동쪽의 필립섬에 사는‘꼬마 펭귄(쇠푸른펭귄)’들이 무리 지어 관람객 앞을 지나가고 있다. 관람 중에는 사진 촬영은 물론 작은 소리를 내는 것도 금지된다.

이곳에서 19년째 일하는 에이브럼 레베카 팀장은 "이 소중한 펭귄은 한때 사라질 뻔했다"고 했다. 1920년대 풍경 좋은 섬에 골프장·별장 등이 무분별하게 건설되며 펭귄 주요 서식지 10곳 중 9곳이 파괴됐다. 1966년 호주 정부는 "사람이 펭귄의 가장 위협적인 적"이라고 지목하고 개발을 통제했다. 섬 곳곳에 지어진 건물 180여 채를 정부가 사들여 철거하기 시작했다. 안 팔겠다는 자도 있고, 가격 협상도 녹록지 않았다. 마지막 주택을 철거한 때가 2010년. 건물 '청소'에만 44년이 걸린 셈이다.

복원 작업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지금 쓰는 펭귄 생태 투어 기지국 건물을 허물고 이를 해안에서 더 먼 곳으로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펭귄들의 서식지를 더 늘리는 것이 목표다. 레베카 팀장은 말했다. "DMZ가 열렸을 때, 우리 실수를 반복하지 마십시오. 한 번 망가진 자연을 되살리려면 너무나 많은 돈과 시간이 들어갑니다. 자연 파괴는 순간입니다. 되살리려면 너무나 오래 걸리고요."

◇"좋은 관광은 자연을 돕기도 한다"

태즈메이니아 섬의 동물 탐방원 '언주'의 최고 인기 동물은 태즈메이니아데블이라는 희귀종이다. 하지만 언주에 입장하고 여러 시간이 지났는데도 데블은 코빼기도 안 보였다. 대신 놀리듯 세워진 이런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 무척 흔한 종(種). 우리 안에 제 발로 들어가서 삶. 개체 수 계속 증가 중.' 우리가 오히려 동물들의 구경거리라니! 어디선가 데블들이 킥킥대고 있을 것 같았다. '언주' 창립자 존 해밀턴씨는 "데블은 야행성이어서 낮에는 잘 돌아다니지 않는다"고 했다. 10만㎡짜리 자연에선 대신 캥거루·왈라비와 다양한 조류가 뛰어노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여러 시간 끝에 수풀 돌담길에서 자고 있는 데블을 딱 한 마리 목격했다.)

동물은 야생에, 인간은 우리에? - 호주 태즈메이니아데블 언주(UnZoo)에선 ‘보는 자’와 ‘보이는 자’가 보통 동물원과는 정반대다. 때로 인간은 야생 태즈메이니아데블을 보기 위해 투명한 반구 안에 들어가야 한다. 보고 싶은 동물이 안 나타나도 어쩔 수 없다.

해밀턴씨는 "자연을 제대로 보호하기 위해 적당한 스토리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무런 투어도 허용하지 않으면 생태계는 무척 잘 보호되겠지요. 하지만 자연을 해치지 않도록 잘 관리하는 체험 프로그램은 자연을 도울 수 있습니다. 관심을 이끌어내거나 환경 보전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식으로요." 언주 입장료·후원금으로 버는 수입 대부분은 다양한 동물 보호 사업에 쓰고 있다.

◇"개입은 최소화… 자연을 믿으세요"

호주 남부 캥거루섬은 인간 손길이 한동안 닿지 않았다는 점에서 DMZ와 닮아 있었다. 동서로 150㎞ 길이인 이 섬은 약 3000년간 사람이 살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1919년 개발을 시작한 캥거루섬은 약 3분의 1이 국립공원이다. 이 공원의 운영 방침은 간단하다. 웬만하면 자연에 개입하지 않는다. 가이드 브라이언씨는 "큰불이 나더라도 인위적으로 끄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2007년 큰 화재가 났을 때도 우리는 내버려 두었습니다. 자연을 믿었죠. 숲이 60% 정도 타버렸어요. 하지만 어느새 섬은 다시 나무로 뒤덮였지요."

이 공원 탐방은 까다롭다. 안내자 없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 많다. 동물에 너무 가까이 다가가면 저지한다. 우리는 코알라·물개·캥거루 같은 동물이 제멋대로 잘 사는 모습을, 또 하나의 종으로서 멀리서 바라보았다. 캥거루섬을 방문한 미국 학생 제이 탤벗(18)씨는 "자연경관이 거칠게 남아 있는 모습이 정말 신기하다. 한국에도 이런 거대한 생태공원이 생긴다면 꼭 찾아가 보고 싶다"고 했다. 나는 말해주었다. "DMZ는 이곳보다 훨씬 거칠 거야. 꼭 놀러 와!"

[미탐100 다녀왔습니다]

있는 그대로… 우리 DMZ도 호주처럼 관리했으면

반려견 '코코미'를 16년째 키우고 있는 스물다섯 살 대학생 유요섭입니다. 저는 동물을 좋아하고 관심도 많습니다. 그래서 지난해 9월 대전의 한 동물원에서 퓨마 '뽀롱이'가 사살됐다는 뉴스를 접하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동물원 측의 허술한 관리로 동물이 목숨을 잃은 일은 처음이 아닙니다. 돌연 세상을 떠난 북극곰 '통키', 수조에서 폐사한 흰돌고래 '벨로'….

유요섭 탐험대원이 태즈메이니아데블 언주(UnZoo)에서 식사 중인 캥거루들과 나란히 앉아 있다.

그러던 중 우리와 환경이 완전히 다른 호주 동물원을 알게 됐습니다. 자연환경 그대로를 동물의 터전으로 제공하는 호주에선 우리 같은 사고는 없었습니다. 지난달 찾은 호주의 사람들은 인간이 지구의 주인이란 생각을 버리고, 동물과 공존하려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땅이 넓어서일까요. 저는 철학의 차이가 호주라는 에코 투어의 명소를 만들어 냈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한반도 남북을 가로막은 비무장지대(DMZ)가 열릴 겁니다. 그 안에 있는 동물들이 한반도에서 조화롭게 상생할 방법을 찾기 위해 지금부터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