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한나 이야기

조선일보
  • 황선미 동화작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입력 2019.07.15 03:00

황선미 동화작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황선미 동화작가·서울예대 문예창작과 교수
영화를 보러 나섰는데 비 예보 탓인지 마침 바람마저 습하다. 이런 날 에코백에 플랫슈즈 차림이면 스물 몇 살은 어려지는 기분에다 어쩐지 사는 게 꽤 괜찮다는 생각도 든다. 시작과 달리 영화관을 나올 때는 생각이 참 많아졌다. 왜 하필 그 어린 꼬맹이 한나가 생각났을까.

영화 '칠드런 액트'를 만든 이언 매큐언의 문제의식과 감수성이 좋다. 사회적 입지를 갖춘 여성 판사와 종교적 신념으로 죽음을 받아들이려던 청소년의 관계가 삶에 대한 묵직한 방점을 남긴다. 판사는 수혈을 거부하고 죽음을 기다리던 소년을 법적 소신에 따라 살려냈고, 소년은 달라진 인생의 의미를 판사를 통해 얻고자 한다. 통속적인 시선은 판사를 향한 주인공 애덤의 집착에 불안감을 느끼고, 판사는 도덕적으로도 소년이 다가오는 것을 거부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이토록 불완전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은 너무나 분명해서 결국 죽음을 선택한 애덤의 마지막이 깊은 슬픔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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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을 거부한 판사를 바라보던 애덤의 절망적인 장면에서 하필 스웨덴의 한나가 떠올랐다. 한나는 손 내미는 나를 보자마자 식탁 밑으로 강아지처럼 도망쳤다. 그러고도 웃음 띤 얼굴로 내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가 나타나자 잽싸게 기어 나와 가슴에 착 달라붙는데 껌딱지란 바로 그런 것일 게다. 여전히 웃으며 나를 보지만 너무나 분명하던 거부감.

나는 처음 본 아이를 함부로 안으려던 태도를 반성했고, 악수조차 섣불렀음을 깨달았다. 한나의 외양은 스웨덴 엄마보다 나와 비슷하지만 한나는 끝내 곁을 허락하지 않았다. 젖먹이 때 입양됐다는 한나에게 우리 사회의 거부가 무의식에라도 남은 게 아닐까 싶어 우울했다. 어른이 되고 사랑에 빠지고 세상에 대한 의미를 깨달을수록 근본적인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을 아이. 그 절망이 얼마나 깊을지 짐작도 할 수 없으나 부디 굴복하지 않기를. 그날 한나는 '엄마의 나라'에서 온 손님을 위해 샤프란 아이스크림 만드는 데 고사리 손을 보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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