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비뼈 골절에도 "애 아빠인데…"…"가정폭력의 굴레 ‘반의사불벌죄’, 성범죄처럼 폐지해야"

입력 2019.07.14 15:51 | 수정 2019.07.14 20:10

갈비뼈 골절됐는데도 "애 아빠인데" 신고 주저
"다시 한 번 믿어보겠다" 말 한마디에 처벌 없이 넘어가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한국여성에게도 굴레
"성범죄처럼 반의사불벌죄 삭제해 강력 처벌해야"

"애 아빠인데 어떻게 신고하냐."

지난 4일 전남 영암군의 한 원룸에서 남편 김모(36)씨로부터 3시간 동안 폭행을 당한 베트남 국적의 이주 여성 A(30)씨는 지인이 경찰 신고를 권유하자 이 같이 말했다고 한다. A씨는 폭행 장면이 담긴 영상 등 범죄를 입증할 증거까지 갖고 있었지만 남편 김씨가 ‘아이 아빠’란 이유만으로 가정폭력을 계속 참으려 했던 것이다. A씨는 당시 폭행으로 갈비뼈가 골절되는 등 전치 4주의 부상을 당했다. A씨는 지난 4월부터 다른 남자와 통화한다거나 김씨의 부모님이 주는 농산물을 거절했다는 이유 등으로 상습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려왔다.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을 계기로 단순 폭행과 협박 같은 가정폭력을 피해자가 원치 않으면 처벌할 수 없는 ‘반의사불벌죄’로 규정한 현행 법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반의사불벌죄 규정 때문에 지속적인 학대를 당하는 피해자들이 가정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비단 이주여성뿐만 아니라 한국 여성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법조계와 정치권에서는 지난 2013년 성범죄에 대해 반의사불벌죄와 친고죄 규정을 삭제해 처벌을 대폭 강화한 것처럼 가정폭력에 대해서도 법적,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김모(36)씨가 지난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김모(36)씨가 지난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이주여성 가정폭력 1200여 건 중 33명만 구속
많은 결혼 이주 여성들이 배우자의 가정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지만 가해자가 강력한 처벌을 받는 경우는 많지 않다. 경찰청에 따르면 작년 한 해 결혼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사건은 1273건에 달했다. 그러나 이중 구속된 경우는 33명뿐이었다. 대부분 처벌을 피하거나 불구속 기소, 보호관찰·사회봉사와 같은 보호처분에 그쳤다.

상습적인 가정폭력이 살인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작년 12월 경남 양산에서 필리핀 출신 이주여성 B씨는 남편에 의해 살해당했다. 이들 부부는 7년 동안 결혼생활을 했지만, 남편의 건강이 악화되면서 사이가 나빠졌다고 한다. B씨가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가는 것을 남편이 싫어해 갈등을 빚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베트남 출신의 여성 C씨는 2017년 6월 서울 성북구 자택에서 잠을 자다가 시아버지로부터 흉기에 찔려 숨졌다. 시아버지는 C씨가 용돈을 주지 않고 구박을 한다는 이유로 술을 마시고 범행을 저질렀다고 한다. B씨와 C씨 모두 살해당하기 전 지속적인 가정폭력에 시달렸지만 별다른 조치 없이 방치됐다.

손수호 법무법인 헌재 변호사는 "한국말이 서툰 이주 여성들은 한국이 다른 나라다 보니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신고해야 하는지조차 모를 수도 있다"며 "또 정보가 있어도 이들에게 신고 이후 도움을 줄 기관을 찾기 힘들고, 자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지인도 없어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반의사불벌죄’ 때문에 방치되는 가정폭력"
이처럼 이주여성에 대한 가정폭력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더이상 가정폭력에 대해서 반의사불벌죄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서울가정법원 한 판사는 "‘다시 한 번 저 사람을 믿어보겠다’ ‘안 때리겠다고 약속했다’며 그냥 넘어가기 때문에 가해자가 결국 아무런 처벌도 받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는 또 "심한 폭행으로 크게 다친다면 상해죄가 되는데 이는 반의사불벌죄가 아니다"라며 "하지만 배우자가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진단서를 끊어오지 않으면 피해가 입증이 안 돼 상해죄로도 처벌이 불가능하다. 가정폭력에 대한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많은 피해 여성이 가정폭력을 당해도 가정을 지키려는 마음에 처벌을 원치 않는다며 사건을 끝내는 경우가 많다"며 "이게 피해가 반복되는 원인이 된다"고 했다.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지난 8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정폭력특례법의 반의사불벌죄 폐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베트남 출신 이주여성에 대한 심각한 가정폭력으로 온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이 상습적으로 매를 맞으면서도 ‘우리 남편이 일하지 못하면 먹고 살기 어렵다'면서 풀어달라고 하는 처벌불원 의사를 표시해 또다시 폭행 피해를 당하기도 한다"고 했다.

앞서 정부는 지난 2013년 강간이나 강제추행 등 모든 성범죄에 대해 친고죄와 반의사불벌죄 규정을 삭제해 피해자의 고소, 피해자와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형사 처벌을 받게 했다.

성범죄를 친고죄로 규정한 것은 성폭력 피해 사실이 알려지는 것 자체가 피해자의 프라이버시 침해 등 2차 피해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당시 법원은 " 성범죄는 개인적 문제가 아니라 전 사회를 어지럽히는 무서운 범죄여서 친고죄로 할 사회적 근거가 사라졌다"는 입장이었다.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아내를 폭행한 남편이 지난 8일 구속됐다. 사진은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고 있는 영상의 한 장면. /페이스북 캡처
베트남 출신의 결혼이주여성 아내를 폭행한 남편이 지난 8일 구속됐다. 사진은 인터넷 등을 통해 퍼지고 있는 영상의 한 장면. /페이스북 캡처
다만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은 반의사 불벌죄와 상관 없이 처벌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남편이 A씨를 소주병으로도 폭행했기 때문이다. 소주병과 같은 ‘위험한 물건’으로 폭행을 하면 특수폭행죄가 적용된다. 특수폭행죄는 피해자 의사와 상관 없이 처벌된다.

반면 깊숙한 가정사까지 국가가 일일이 개입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는 반론도 있다. 가사 사건을 전문으로 하는 이인철 변호사는 "피해자가 진심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데 수사기관에서 나서서 처벌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며 "자칫 국가만능주의에 빠질 수도 있다"고 했다. 이 변호사는 "사실 이번 사건처럼 동영상이 공개돼 논란이 되지 않았다면 경찰이나 판사들이 얼마나 신경을 썼을까 싶다"며 "수사기관과 법원에서 지나치게 엄격한 증거를 요구하는 풍토 때문에 가해자가 처벌을 피하고 이혼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를 더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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