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트와이스처럼 되고 싶어요” 일본 여심 홀린 K-스타일

입력 2019.07.14 12:00

한일관계 경색에도 한국 없이 못 사는 10대 여성들
한국산 화장품으로 치장하고, 한국식 길거리 음식 즐기고...
돈 되는 한류…일본 지상파 TV 4사, 한국 드라마 동시 방영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서 한국식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일본 젊은이들./김은영 기자
도쿄 신오쿠보 거리에서 한국식 길거리 음식을 즐기는 일본 젊은이들./김은영 기자
한일관계가 경색되고 있지만 일본 젊은이들의 한국 사랑은 더욱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7일 찾은 도쿄 신오쿠보 거리는 한국 문화를 즐기는 젊은이들로 북적였다. 도쿄의 대표적인 한류거리인 이곳엔 K-팝 스타의 사진을 사고, 화장품을 구매하고, 음식을 즐기는 젊은이들로 가득했다.

한국 화장품을 모아 파는 편집매장 스킨가든도 발 디딜 틈이 없었다. 하루 평균 7000명이 방문하는 이 매장은 월 매출이 10억원에 달한다. 유명 브랜드를 비롯해 한국에선 다소 인지도가 낮은 제품들도 진열됐다. 요즘 가장 인기가 있는 제품은 지나인스킨의 우유크림이다. 한국인 점원은 "한국 화장품에 관심 많은 분들이 많이 찾는다. 정치 상황에 관계없이 자신들이 좋아하는 걸 구매하는 분들"이라고 말했다.

길거리엔 핫도그와 호떡 등 한국식 길거리 음식을 먹는 젊은이들로 붐볐다. 한일관계가 악화되고 있지만, 현안에 관심 갖는 사람은 없었다.

◇ 도쿄 중심지 파고든 ‘핑크’ 한류

하라주쿠, 신주쿠, 시부야 등 도쿄 쇼핑 중심지에서도 한국 문화가 성행한다. 스타일난다,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등 한국 화장품과 의류 브랜드가 인기를 끄는가 하면, 일본 의류 매장도 한국풍 옷과 한글 홍보 문구를 내세운다. 하라주쿠의 외국인 방문 순위는 2016년 8위에서 2017년 6위로 올랐는데, 일각에선 한류의 영향 때문이란 분석을 내놨다.

하라주쿠 스타일난다 매장에서 화장품을 발라보고 있는 10대 소녀들./김은영 기자
하라주쿠 스타일난다 매장에서 화장품을 발라보고 있는 10대 소녀들./김은영 기자
흔히 한국의 색으로 ‘붉은악마’로 대표되는 ‘빨강’을 꼽는다. 열정적이고 진취적인 한국인을 빗댄 색이다. 하지만 도쿄에서 만난 한국의 색은 파스텔 색조의 ‘핑크’다. 현재 일본의 한류를 움직이는 세대는 10대 후반~20대 여성들로, 이들은 한국의 스타일을 "귀엽고(가와이) 멋지다(가꼬이)"라고 평한다.

하라주쿠의 에뛰드하우스 매장에서 만난 한 중학생(14)은 한국 걸그룹 트와이스를 좋아한다고 했다. 앳된 얼굴의 소녀는 한국의 걸그룹처럼 화장하고 옷을 입었다. 그는 "트와이스의 멤버처럼 되고 싶다"면서 "한국 화장품은 케이스가 예뻐서 좋다"고 했다.

일본 젊은 여성들에게 한국 걸그룹은 동경(憧憬)의 대상이다. 모바일 중고시장 앱 라쿠마가 ‘패션에 참고하는 나라’를 조사한 결과 10대의 52%, 20대의 32%가 한국을 꼽았다. 인스타그램에선 ‘#한국인이되고싶다(간코쿠진니 나리타이)’라는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이 2만8300여 개가 검색된다. 이런 열기를 반영해 일본 유명 디자인 학교인 반탄디자인연구소는 한국의 패션과 화장법을 가르치는 교과과정을 개설했다.

이날 오전 방영된 후지TV의 토크쇼에는 10대 모델이 나와 "일본 여고생은 한국 없이 살 수 없다"라고 했다. 극우 성향의 후지TV에서 이런 발언이 나온 것은 이례적인 일로 화제를 모았다.

◇ 일본 10대, "우린 한국 없이 못 살아"

스타일난다 매장에선 엄마와 초등학생 자녀가 함께 쇼핑하는 장면이 목격됐다. 일본의 부모들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일본이나 미국의 것보다 건전하고 무해(無害)하다고 여긴다. K-팝 아이돌 그룹만 봐도 오랜 기간 힘든 훈련을 거쳐 꿈을 이룬 모습을 보인다. 그래서 일본 부모들은 자녀들이 맘껏 한류를 즐길 수 있도록 지원한다.

한국 스타일이 인기를 끌자 콧대 높은 백화점도 한국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시부야109와 신주쿠의 루미네 에스트는 에뛰드하우스, 이니스프리, 스킨푸드, 츄, 디홀릭 등 한국 화장품과 의류 매장을 들였다. 하라주쿠의 라인스토어와 갤럭시 전시관, 오모테산도의 어피치 카페 등도 일본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로 선호된다.

시부야109 백화점에 입점된 한국 브랜드 츄, 파스텔 톤의 핑크는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한국의 이미지다./김은영 기자
시부야109 백화점에 입점된 한국 브랜드 츄, 파스텔 톤의 핑크는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열광하는 한국의 이미지다./김은영 기자
10대가 한국의 이미지에 열광한다면, 20대 여성들은 한국 문화에 깊이 파고든다. 회사원 메이(26) 씨는 "한국 문화가 신선한 자극을 준다"고 했다. 10년 이상 한국 화장품을 써왔다는 그는 이니스프리, 미샤, 메디힐, CNP 등 한국 브랜드를 줄줄이 나열했다. ‘82년생 김지영’과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같은 한국 책도 읽었다고 했다. 메이 씨는 일 년에 두세 번 한국을 찾는다. 그는 "한국의 음식과 음악, 드라마를 즐기고 전통가옥과 옷도 좋아한다. 한국의 현대 미술도 좋아해 한국에 가면 꼭 전시를 본다"고 말했다.

일본 젊은이들이 가장 열광하는 한류 문화는 K-팝이다. 시부야 타워레코드 매장은 지난 3일 발매된 방탄소년단(BTS)의 싱글 앨범 홍보 사진으로 도배됐다. 매장 중앙에 놓인 BTS 앨범 판매대는 텅 빈 채 ‘매진’을 알리는 문구가 붙었다. BTS의 앨범은 발매 당일 46만 장 이상 팔리며 오리콘 차트 1위에 올랐다.

신주쿠에 위치한 카페 ‘여름’은 일본 K-팝 팬들의 성지다. 한류의 색인 핑크로 장식된 이 카페는 음료를 사면 한국 아이돌 그룹의 얼굴이 담긴 컵 홀더를 준다. 한국의 아이돌 그룹 팬들이 자발적으로 여는 팬덤 이벤트가 이곳에서도 펼쳐지는 것이다. 점원 미코(23)씨는 한국어로 "한국 문화를 공유하기 위해 카페를 열었는데, 팬들의 요구로 지난겨울부터 컵 홀더 이벤트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 일본 지상파 TV 장악한 한국 드라마

일본에서 한류는 확실히 돈이 되는 콘텐츠다. 이 달에만 TV아사히, 후지TV, 니혼TV가 각각 ‘사인’(SBS), ‘투윅스’(MBC), ‘보이스’(OCN)의 리메이크 드라마를 방영하며, 8월에는 NHK가 ‘대군-사랑을 그리다’(TV조선)를 방영할 예정이다. 일본 4대 지상파 TV가 동시에 한국 드라마를 편성한 것은 그만큼 한국 드라마가 시청률을 보장한다는 걸 의미한다.

시부야 타워레코드 매장의 BTS 앨범 판매대 앞에 몰린 젊은이들./김은영 기자
시부야 타워레코드 매장의 BTS 앨범 판매대 앞에 몰린 젊은이들./김은영 기자
한류 열풍은 2003년 드라마 ‘겨울연가’의 욘사마(배용준) 신드롬에서 시작됐다. 2010년 초반 K-팝을 내세운 2차 한류와 현재의 3차 한류에 이르기까지, 중간중간 고비가 있었지만 불씨가 꺼지긴커녕 오히려 화력이 커졌다. 현재 10~20대 일본 젊은이들이 한류에 호감을 갖는 이유도 그들의 어머니와 할머니가 한국 드라마를 보는 걸 보며 자랐기 때문이다.

황선혜 한국콘텐츠진흥원 일본비즈니스센터장은 "젊은 층의 소비력은 떨어지지만, 이들이 지속적으로 한류를 즐긴다면 소비력이 커졌을 때 엄청난 파급력 보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과거 세대와 달리 한류를 소비하는 일본 젊은이들은 한국이어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좋아서 즐겼는데 알고 보니 한국의 것"이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정치 상황은 취향을 즐기는 데 방해 요소가 아니다. 마치 국내의 Z세대들이 일본 제품인 줄 모른 채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을 즐기는 것과 같다.

황 센터장은 "과거 한류는 배우나 가수에 관심이 국한됐지만, 지금 세대는 화장품과 패션, 음악 등 다양한 소비재에 관심을 둔다. 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자발적으로 한국 문화를 알리고 소통한다"면서 "이젠 콘텐츠를 파는 걸 넘어 콘텐츠로 벌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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