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준 "이대로 가면 '한국판 고난의 행군' 시작될 것...늦기 전에 경제정책 바꿔야"

입력 2019.07.14 08:55 | 수정 2019.07.14 15:20

"日 경제 보복, 한·미·일 삼각동맹 깨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에서 시작…日 의심 푸는 조치해야"
"대한민국 70년 경제가 무너지고 있어... 방치하면 한국판 고난의 행군 시작될 것"
"시대 꿰뚫는 철학 없이 인물만 바꾸는 눈속임은 성공 못해"
"초선 의원 몇 데려다 놓는다고 정치에서 무슨 역할을 기대하나"
"문제 해결보다, 문제를 상대 찌르는 무기로 쓰는 정치권이 문제"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인터뷰 직후 대구행 KTX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미술관에서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하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인터뷰 직후 대구행 KTX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자신을 지지하는 모임인 '징검다리 포럼' 대구·경북 창립식에 참석했다. 행사 장소인 대구 수성구 그랜드호텔은 이날 저녁 늦게까지 참석자들로 붐볐다. 그런데 모임을 마친 그는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한국당이 (대구를 포함해) 내년 선거를 낙관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한 달 전과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지난달 4일 미국에서 귀국한 직후 첫 일정으로 모교인 대구 영남대에서 특강을 했었다. 한국당 내에선 내년 총선 때 김 전 위원장의 대구 수성갑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 지역 현역 의원은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의원이다.

김 전 위원장이 미국에서 돌아온 뒤 한달여 동안 한국당 지지율은 내리막을 탔다. 한동안 상승세를 타던 흐름이 꺾였다. 황교안 대표 취임 3개월째였던 지난 5월 마지막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한국당 지지율은 24%까지 올랐다. 민주당(36%)과 12%포인트 차이였다. 그러나 7월 첫째 주 조사에선 20%로 하락해 민주당(40%)의 절반 수준이 됐다. 보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 상황도 마찬가지다. 지난 6주 동안 한국당의 대구·경북 지지율은 4%포인트(42%⇾38%) 떨어졌고, 민주당 지지율은 4%포인트(22%⇾26%) 상승했다. 한국당 내 분위기도 자연스레 "내년 총선에서 해볼 만 하다"에서 "이대로 가면 위험하다"로 바뀌었다.

지난 2·27 전당대회에서 당선된 황 대표에게 당 지휘권을 넘긴 김 전 위원장은 "지금 한국당의 문제는 보수통합 못지 않게 내부 혁신"이라며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지금 한국당에 인적 쇄신을 할만한 동력으로서의 리더십이 있기는 한가"라고 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은 다음에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기대감을 주는 카리스마가 있었고, 나아가 당원들의 집합적인 신념이 있었다"며 "그런 의미에서 지금 한국당의 리더십은 걱정"이라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노무현 정부 때 청와대 정책실장을 지냈다. 그런 그는 최근 한·일 갈등과 한국 경제의 위기 문제에 대해서도 걱정을 쏟아냈다. 김 전 위원장은 "일본의 무역 규제 조치는 한국 정부가 한·미·일 삼각동맹 협력 체제를 허물려고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갖고 있는 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 측의 이런 의심을 풀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은 또 한국 경제에 대해 "최근의 경제 위기가 단순히 경기 순환적인 위기가 아니라 70년 동안 쌓아온 한국 경제의 근본을 허무는 것 아닌가 걱정된다"며 "다음 정권에서 정책 기조를 바꿔도 회복하기 어려울 수 있고, 지금 상황을 방치하면 대한민국판 고난의 행군이 시작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더 늦기 전에 문 대통령이 경제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며 "나라가 어려운 상황에서 야당도 제대로 된 대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위원장을 지난 11일 조선일보 미술관 1층에서 만난 후, 포럼을 마친 이튿날 다시 전화로 인터뷰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一대구 포럼 창립식 분위기는 좀 어땠나.

"많이들 찾아와 주셨다. 그런데 내 마음은 오히려 무겁다. 불과 한 달 사이에 대구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더라. 쓴소리도 많이 들었다. ‘대구는 뒤에서 받쳐줄 테니, 지역에는 내려오지 말고 중앙에서 (당을 쇄신하는) 활동을 하라'는 지역 원로들의 말씀이 많았다."

一황교안 대표 취임 후 상승하던 당 지지율이 최근 정체·하락세다.

"악재(惡材)가 많았다. 당 지도부가 문제가 생기면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서 악재에 대처해야 하는데, 그런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다. 새로운 이슈와 비전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러니 해묵은 계파논쟁이나 지엽적인 해프닝성 이슈에 당이 허우적거리게 됐다. 정치는 '꿈을 파는 것'이다. 유권자들이 살 만한 꿈을 내놓지 못하니 자꾸 과거로 가는 거다."

一황 대표 취임 후 표면적으로 잦아들었던 한국당 내 친박·비박 계파 갈등이 최근 당직, 국회직 인사를 놓고 재연 조짐을 보이고 있는데.

"나 역시 비대위원장 때 친박 비박 인사를 안분(按分)하느라 사람 쓰는 게 어려웠다. 당에 쓰임새가 있는 사람인데 친박이라서 기용을 못하기도 했다. 지금 친박· 비박을 나누는 것은 의미가 없다. 사람을 봐야 한다. 다만 황 대표가 당직에 사람을 기용할 때, '사정이 이러해서 지금 이 사람이 꼭 필요하다'는 이유를 명확히 밝혔으면 더 좋았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니 계파 갈등이니 하는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一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통합이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와 대담하는 과정에서 청중들 질문을 받았는데, 보수 통합에 대해 많이 묻더라. 그만큼 현 보수 진영의 과제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한국당의 문제는 통합, 당내 분열 구도만 해결한다고 없어지는 게 아니라고 했다. 선거를 생각하면 다른 변수들이 많다. 여당인 민주당은 풍부한 자원을 바탕으로 과감한 인적 혁신을 할 것이다. 반대로 한국당은 인적 쇄신을 못할 가능성이 높다. 보수 분열에 인적 쇄신도 부진하고, 거기에 더해 북한의 김정은이 어떤 방식으로든 현 여권에 도움이 되는 행동을 취할 것이다. 여기에 정부의 보조금 혜택을 받는 사람들의 표심은 여권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한국당이 진짜 걱정해야 할 일은 이런 것들이다."

一민주당은 대통령의 복심이라는 양정철씨가 당 싱크탱크 수장을 맡아 정책, 인재영입 등에서 다이나믹한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다는 평가가 많다.

"(민주당은) 지난 2016년 총선을 판가름 지은 새누리당 박근혜· 이한구식 공천 사태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인물 교체를 위해 매우 세련되게 접근할 것이다. 반면 여권과 비교해 야권은 인적 쇄신에 제약이 많다. 우선 리소스(자원)가 부족하다. 여당은 공기업 같은, 총선 불출마를 선택하는 현역 의원에게 줄 자리가 있지만 야당은 그런 게 없다. 용퇴를 유도할 자원이 없는 것이다. 그런 핸디캡을 극복하려면 야당은 집권 가능성을 보여줘야 한다. 그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 야당에 어떤 인재가 들어오겠나. 집권 가능성을 보여주지 못하는 리더십이 문제다."

一지금의 한국당 리더십에 문제가 있다는 뜻인가.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한국당에 인적 쇄신의 동력을 가진 리더십이 있기는 한가. 단순히 황교안 리더십의 문제 차원이 아니다. 김대중·노무현은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란 카리스마가 있었다. 그게 리더십의 원천이 됐다. 하지만 더 크게는 당원들 사이에서 다음 정권을 잡을 것이라는 집합적 신념이 존재해야 한다. 그래야 인적 자원이 모인다."

一 최근 한국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최근 한국 경제 상황을 보면 비극적이다. 우리가 어떻게 지금의 경제를 이루었나. 70년의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며 이뤘다. 경제 발전이라는 이름으로 때로 인권이 희생되기도 했다. 그렇게 이룬 한국 경제가 내려가고 있다. 경기 사이클의 문제가 아니다. 사이클이 문제라면 경제가 어려워지면 구조조정하고 다시 일어설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의 한국 경제는 흔히 말하는 'L'자 형 불황, 나는 더 나아가 기울어진 'L'자 불황의 하방 국면으로 보인다. 특히 소득 수준에 비례했을 때 기술과 인적 자원의 수준이 내려앉고 있다. 오늘날의 기술 발전의 속도를 보면, 잠시 눈 감는 사이에 다른 나라에 추월 당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다. 중국의 기술발전 속도를 보라. 그리고 우리 사회에서 현재 기술 발전 속도를 보라. 70년에 걸쳐 이룬 한국 경제가 하루 아침에 내려앉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판 고난의 행진'이 시작될 수 있다. 지금의 20대를 두고 광복 이후 부모보다 잘 살지 못하는 첫 세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 젊은이들을 보기 민망하고 미안하다."

一 그래도 문재인 정부가 잘한 점도 있지 않나.

"문재인 정부가 잘한 것이 있다면 평화와 통일의 문제를 키워서 토론과 논쟁의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 세부적인 정책은 불안하지만, 화두에 올려놨다는 점은 인정할만하다고 본다."

一 일본 정부의 경제 보복 조치는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아베 총리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지지층을 결집시키려고 이 같은 조치를 내렸고, 선거가 끝나면 누그러질 것이란 낙관적인 분석도 나온다.

"나는 좀 더 크게 보고 싶다. 비대위원장을 그만 두기 얼마 전, 일본을 방문해 정관계 인사를 만났다. 그 당시에도 한·일 관계는 그리 좋지 않았다. 만나보니 일본 정치권은 현재 한국 정부에 대한 의심과 의구심이 있었다. 그 핵심은 한국 정부가 한·미·일 삼각동맹 협력 체제를 깨려고 한다는 것이었다. 기존 동맹 협력이 바탕인 동북아 정세를 흔들려고 한다는 의심이다. 일본 정치권은 한국 정부가 한·일, 한·미 관계가 악화되는 것을 방관하고, 오히려 조장하고 있다는 의심을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이들은 물었다. 한국 정부가 무슨 대안적 체제를 구상하고 있나. 그렇다면 대안이라는 것이 중국 중심의 동북아 질서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중국 헤게모니(패권)의 동북아 질서는 일본은 물론 미국도 받아들일 수 없다. 이는 일본의 미래를 직접적으로 흔들 수 있다. 지금 일본은 한국 정부에게 일종의 사인을 보내는 것이다. 그렇게 돼서는 안된다고. 경제 보복의 해법으로 한국 정부는 기업을 불러서 수입선을 다변화하고, 기업 차원에서 외교적 노력을 하라고 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생존하려고 더 좋은 소재가 있으면 그 쪽으로 간다. 만약 일본 외에 다른 기술 선진국들과 외교 관계가 악화됐다고 부품 소재를 모두 국산화할 수 있나. 부품 소재 국산화를 주장하는 것은 정말 말도 안되는 해법이다."

一 그렇다면 해법이 있나. 여권에서는 지금은 대통령이 나서야 할 때가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한·일 문제를 푸는 것은 정부가 대외적으로 '우리가 가진 동북아 구상이 무엇이다'라는 것을 공개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일본에게 '이러이러한 구상 속에서도 한·일 양국이 불편할 것은 없다'라고 일본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일본의 문재인 정부에 대한 의심을 풀어줘야 한다. 누차 강조하지만 기업을 내세우면 안된다. 기업은 기본적으로 일본과 경제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一보수통합 문제로 돌아가보자. 현 한국당 지도부에선 우리공화당으로 분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있다.

"당 지도부가 보수 통합의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우선 보수 통합의 방향에 대해 당이 입장을 정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당의 지지 기반인) 대구에서 목소리를 좀 내달라고 (지역 원로들에게) 말했다. 보수를 통합하라는 목소리가 대구에서 나오면 한국당 현역 의원들이 우리공화당으로 쉽게 움직일 수 있겠나. 다만 분열 구도만 해결한다고 한국당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一인적 쇄신 문제를 걱정하는 것인가.

"4년 전 총선 때 영입한 인재를 4년 후 총선 때 인적 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퇴출하는 일이 한국 정치권에서 계속되고 있다. 총선 때 현역 교체율이 제일 높은 나라가 한국이다. 인적 쇄신의 이름으로 새로 수혈한 인재 영입에 문제가 있었단 뜻 아닌가. 인재를 영입하더라도 당 지도자가 시대를 관통하는 철학과 가치, 비전을 정립해놓고 그에 맞는 사람을 영입해야 한다. 그동안 한국 정치는 여야가 담합하듯, 인물만 바꿔서 눈속임을 했다. 대구에서도 정치권의 (영입 제안) 연락을 받았다는 사람을 여럿 만나봤다. 공통점이라고는 철학·비전보다는 지역 사회에서 표 좀 나올 것 같은 사람이었다. 인재 영입이 이런 식으로 이뤄져서는 인적 혁신이라고 할 수 있나."

一한국당, 보수 진영이 다음 총선에서 제시해야 할 철학·비전은 무엇이 돼야 한다고 보나.

"한국 사회가 마주한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무엇보다 한국 경제가 내려앉는 데 대한 엄밀한 원인 분석을 하고, 지금 현재 변화하고 있는, 일종의 역사에 대한 견해를 내놓는 인물이 필요하다. 1960~70년대 운동권 논리, 1930년대 미국 좌파 논리를 모자이크로 끼워맞춘 (현 집권 세력이 운영하는) 국가가 잘 굴러가겠나. 역사관과 시대 흐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철학이다. 올바른 철학, 시대를 꿰뚫는 메시지를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一그렇다면 한국 사회의 가장 큰 문제가 뭐라고 생각하나

"한국 사회는 중요한 의제가 의제로 제대로 다뤄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사회적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 해결책을 모색하기보다 상대를 찌르는 무기로 사용한다. 표를 얻는 도구로 사용한다. 다른 사람의 아픔 위에 올라타서 그 위에서 기생한다. 세월호가 터지고 나서 정권이 교체됐다. 사고의 가장 큰 원인인 노후화된 연안여객선은 여전히 바다 위를 항해하고 있다. 대구와 제천 등에 수십명의 사상자를 낳은 화재 사고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누가 이기든 국민은 패배한다. 그렇게 국가는 하강 국면에 접어든다."

一내년 총선에서 대구 수성갑 출마설이 나오는데.

"김병준이 출마 하고 않고가 뭐 그리 큰 문제냐. 내 고민은 어디에 출마하느냐 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사회에 던져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대구가 지금 같은 정치적 좌절감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가 고민이다."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에서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마친 뒤 웃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인터뷰 직후 대구행 KTX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김병준 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1일 오전 서울 중구 조선일보 본사에서 디지털편집국과 인터뷰를 마친 뒤 웃고 있다. 김 전 위원장은 인터뷰 직후 대구행 KTX를 타기위해 서울역으로 향했다. /이태경 조선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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