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불가능한 불완전함이 인간다움의 핵심”…”AI는 인간의사(醫師) 대체 못해”

입력 2019.07.14 06:00

"수조(兆) 가지 정보를 더 섭렵해도 AI의 한계는 자명"
"적극적인 대면(對面) 소통으로 ‘인간에 대한 이해’ 능력 키워야"

"인공지능(AI)이 암세포를 빨리 찾아낼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인간 의사(醫師)를 완전히 대신하진 못할 것이다. 환자를 위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속도 이상으로 유연한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길다란 회의실 탁자 위에 미지근한 아메리카노 한 잔씩 앞에 두고 영국에서 온 백발의 노교수와 마주앉았다. "시간을 내줘서 고맙다(Thank you for your time)고 영어로 인사를 건네자 우리말로 "천만에요"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한국어를 어디서 배웠냐고 물었더니 "친하게 지내는 한국인 제자들이 많다"며 애창곡인 노사연의 ‘만남’ 첫 소절을 즉석에서 불러줬다.

데니스 노블(Dennis Noble) 런던대(UCL) 생리학 박사, 일본 오사카대 방문교수, 미국 존스홉킨스대 방문교수/ 김흥구 객원기자
올해 여든 두 살의 노교수는 시스템 생물학 분야의 세계적인 석학인 데니스 노블(Dennis Noble) 옥스퍼드대 종신교수다. 노블 교수는 AI는 고사하고 ‘컴퓨터’란 말도 생소했던 1960년에 세계 최초로 ‘가상 심장(virtual heart)’을 구현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다. 생명을 지탱하는 핵심 기관인 심장의 작동 원리를 수학적으로 규명해 컴퓨터에 옮겨놓은 것이다. 그로부터 반세기 넘게 세월이 흘렀지만, 그의 연구는 인공장기 개발 등 AI를 접목한 생명공학과 의학 분야에서 변함 없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의학은 빅데이터 기반 AI 기술 접목이 가장 두드러지는 분야 중 하나다. 특히 진단의료 분야에서 성과가 탁월하다. 최근 일본 도쿄대 병원에서 인간 의사라면 2주가 걸렸을 유전자 변이 관련 희귀병 판정을 IBM이 만든 의료용 AI '왓슨 헬스'가 10분 만에 정확히 진단해 화제가 됐다. 지난 4월에는 AI 바둑 프로그램 ‘알파고’를 만든 영국 딥마인드가 30초 안에 중증 안과 질환을 진단할 수 있는 의료 기기 시제품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 ‘AI 의사’들은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의료 데이터를 365일, 24시간 학습해 정확도를 높인다고 하니 인간 의사가 따라가기 버거울 수밖에 없겠다. 노블 교수는 그러나 AI 의사가 지금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를 축적·분석해 정밀도를 더 높인다 해도 인간 의사를 대체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주장한다. 역설적이게도 인간은 모두 불완전하고 예측 불가능한 존재라는 것이 이유다.

조선일보 주최 아시안리더십콘퍼런스(ALC) 참석을 위해 서울에 온 노블 교수를 서울 장충동 신라호텔에서 인터뷰했다.

진단·검사 분야에서는 AI가 인간보다 낫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의료 분야에서 AI 로봇이 인간을 대신하는 날이 올까.

"오늘날의 AI는 ‘최적화 도구(optimization tool)’다. 뭐든 잘하려면 엄청나게 많은 데이터를 ‘학습(머신러닝)’해야 한다는 뜻이다. 의료 분야라고 예외는 아니다. 설정된 알고리즘(컴퓨터 프로그래밍에서 문제 해결을 위한 명령들로 이뤄진 절차)에 따라 최적화된 방향으로 작동하기 때문에 단순·반복 업무가 아닌 전문직 일자리에 ‘위협’이 된다고 보긴 어렵다. 오히려 도움이 되는 부분이 더 클 것이다. 사실 AI의 기본원리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인공적으로’ 정보를 저장해 활용한다는 점에서 인쇄매체의 연장선상에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저장 용량과 처리 속도가 엄청나게 빨라졌을 뿐이다.

지금보다 훨씬 많은 데이터와 자료를 학습해 진단 속도와 정확도가 비약적으로 향상된다면 상황이 달라지지 않을까.

"수조(兆) 가지 정보를 더 섭렵한다 해도 여전히 인간이 설계한 알고리즘을 따라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에 한계가 자명하다. 인간이건 원숭이건 살아있는 생명체는 모두 예측 불가능하고 불완전하기 때문에 정해진 알고리즘 만으로는 파악하기 어렵다. 진단을 내리고 약을 처방하는 것처럼 알고리즘에 따라 최적화 가능한 업무는 AI가 대신할 수 있겠지만, 그 이상은 어려울 것이다."

‘AI 의사’의 가장 두드러진 약점은 뭔가.

"AI 바둑 프로그램인 알파고나 체스프로그램 딥블루가 각각 ‘인간계’ 최고수들을 연파한 것에서 보듯 빠른 학습과 정보 처리 속도는 인간이 범접할 수 없는 AI의 최대 강점이다. 그런데 사람을 다루는 일에서 최선의 결정을 내리기 위해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뭐가 더 필요한가.

"적어도 아직까지 인간이 AI에 앞서는 부분은 ‘유연성(flexibility)’이다. 만일 내가 당신의 신경시스템과 뇌를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연구했다면 앞으로 한 시간 뒤에 무슨 일을 할 것인지 정도는 맞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그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 당신은 마음을 바꿔 ‘난 그렇게 안 할건데’라고 이야기 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자유의지’를 가진 예측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유연한 상황 대처 능력이 중요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식과 논리, 판단력만 가지고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지 않나."

그렇다 해도 중요한 사안에 대한 결정이 더디면 문제가 되지 않을까.

"작년까지 유엔주재 미국대사를 지낸 니키 헤일리가 흥미로운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중요한 안건은 즉각적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루 꼬박 시간을 두고 고민해 결정한다는 것이다. 24시간 동안 여러 가능성과 시나리오를 분석해 경중을 따지며 비교도 하겠지만, 아마 세계 각국의 동료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구하고 적국이나 경쟁자들의 동향도 살필 것이다. 중대 사안일수록 변수가 많기 때문에 속도가 전부는 아니라는 건 짐작이 어렵지 않다. 유능한 정치인과 외교관은 즉각적인 결정을 가급적 피한다. 그렇다고 (즉흥적인 발언으로 종종 구설수에 오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무능한 정치인이란 이야기는 아니다(웃음).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의료진이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제시한 치료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DB
인천 가천대 길병원 인공지능 암센터에서 의료진이 암 환자와 가족들에게 인공지능 ‘왓슨(Watson)’이 제시한 치료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조선DB
윤리적인 가치판단도 AI의 약점이 아닐까.

"내가 환자라면 의사가 지식과 정보 활용만 충실히 하는 게 아니라 윤리적이고 이성적인 가치 기준에 따라 결정하길 기대할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라도 AI가 인간 의사를 대체하긴 어려울 것이다."

인터넷에 정보가 넘치다 보니 특정 질병에 관해 박식한 환자들도 많아졌다. ‘의사 못해먹겠다’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수업을 듣는 학생이 교수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경우도 있지 않겠나. 하지만 충분한 시간을 두고 종합적인 상황과 변수를 분석해 최선의 결론을 도출하려면 단편적인 지식만 가지고는 어렵다. 그래서 AI 시대의 전문가들은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볼게’라고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겨서는 안 된다."

AI 시대의 학교 교육은 어떻게 달라져야 할까.

"AI 기술의 발전은 교육 발전에 큰 도움을 줄 것이다. 과거 컴퓨터나 영상기기가 수업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한 것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AI 시대에도 변함 없이 중요한 건 ‘인간에 대한 이해’다. 이를 위해서는 직접 얼굴을 마주보고 소통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옥스퍼드대는 어떻게 대비해 왔나.

"옥스퍼드대에는 ‘튜토리얼(tutorial)’이라 불리는 독특한 수업법이 있다. 교수 한 명이 1~3명의 학생과 강의실에 앉아 토론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그런데 수업을 들은 학생들은 ‘화상회의나 영상통화로는 절대 진행할 수 없는 수업’이라고 이야기 한다. 인간은 대화 과정에서 무의식 중에도 끊임없이 상대의 표정과 손동작 등을 살피면서 생각과 기분을 읽어들이는데, 화상회의나 영상통화로는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 능력은 AI 시대에 중요한 경쟁력인데, 직접적인 대면(對面) 소통을 통해 키울 수밖에 없다."

지난해 중국 과학자가 세계 최초로 유전자 편집을 거친 아기를 출산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해 충격을 줬다. 중국 과학기술의 규제 없는 성장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유전자의 역할에 대해서는 아직 규명되지 않은 부분이 많다. 그런데도 ‘잘 안다’고 생각하고 덤비는 건 큰 문제다. 미래 세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실험에 대해서는 규제 수위를 높여야 한다."

중국에서는 지난해 11월 (賀建奎) 중국 남방과학기술대 교수가 에이즈 바이러스에 면역력이 있도록 유전자를 편집해 쌍둥이 여자아이를 탄생시켰다고 주장해 세계 과학계에서 연구윤리를 위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중국 정부의 조사 결과 유전자편집 아기 탄생이 사실로 드러나자 그가 소속됐던 중국남방과기대는 그를 해고한 뒤 연구활동을 중단시켰다.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라고 들었다. 건강 관리 비결은.

"되도록 많이 걸으려 노력한다. 차로 이동해야 하는 경우에는 택시 대신 버스를 이용한다. 조금이라도 많이 움직이기 위해서다. 당뇨와 고혈압 방지를 위해 짜거나 단 음식은 멀리한다. 난 매우 ‘의학적인’ 인간이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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