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도 건달도 사랑한 총, 폭력의 판도라 상자 되다

입력 2019.07.13 03:00

소련 병사 칼라시니코프가 개발, 흙·모래 들어가도 발사되는 소총
베트남·이라크戰서 M16에 판정승… 소련 해체된 뒤 전 세계로 뿌려져

AK47

AK47

래리 커해너 지음|유강은 옮김|이데아
392쪽|2만원

적어도 50개 나라에서 정규군 개인 화기로 사용될 뿐 아니라 반군과 테러리스트, 마약상, 거리의 폭력배 등 비정규 전투 인력들에게도 두루 사랑받는 소총이 있다. 1947년 태어난 이래 해마다 평균 25만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가공할 무기. 베트남전과 이라크전에서 M16과 숙명의 라이벌전을 벌여 두 번 모두 판정승을 거둔 뛰어난 소총, AK47이다.

이 불세출의 소총은 탄생 과정부터 흥미롭다. 2차 세계대전에 동원된 소련 병사 미하일 칼라시니코프(1919~2013)가 1941년 10월 브랸스크 전투에서 독일군이 쏜 포탄 파편에 어깨를 관통당하지 않았다면 AK47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지 모른다. 무기를 들 수 없게 된 스물두 살 청년은 뜨거운 조국애와 맹렬한 복수심의 배출구를 찾아 총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정규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 기계 천재에게 자유로운 상상력을 부여했다. 총기 개발 전문가들은 내부에 들어간 이물질이 격발을 방해하는 것을 막기 위해 부품을 정밀하게 조립했다. 칼라시니코프는 반대로 부품 사이 공간을 넓혔다. 모래나 흙바닥에 질질 끌린 소총은 대부분 먹통이 된다. 그러나 AK47은 방아쇠를 당기면 개가 물기를 털어내듯 모래를 사방으로 튕겨내며 불을 뿜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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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나족과 분쟁을 벌이던 에티오피아의 하메르족 전사들이 AK47로 무장하고 두 부족 사이 경계지역을 정찰하고 있다(왼쪽). 자신의 이름을 빌려준 보드카를 들고 홍보하는 칼라시니코프(가운데). 베트남에 파병된 미 해병대원이 노획한 AK47을 들고 있다(오른쪽). /위키미디어 커먼스

소련은 이 값싸고 강력한 무기를 '친구 맺기'에 활용했다. 가난한 공산권 국가들이 무상으로 제작 기술을 받아갔다. 북한은 1958년부터 이 총을 생산했다. 미국의 명품 소총 M16과 벌인 두 번의 대결은 AK47의 위대함을 과시한 무대였다. 습하고 더운 베트남 밀림과 논밭에서 수많은 미군이 발사되지 않은 총을 부여잡고 전사했다. 자신의 총을 믿지 못하게 되자 적에게서 노획한 AK47로 무장했다. 이를 눈치 챈 베트콩은 미군을 사살하고 전리품을 챙길 때 일부러 M16만 두고 갔다. "쓸모없는 총으로 우리와 싸움이 되겠느냐"는 조롱을 담은 심리전이었다. 이라크 사막에서 벌인 재대결 결과도 마찬가지. 모래 폭풍만 불면 미군은 M16을 랩으로 싸거나 총구를 콘돔으로 막느라 바빴다. AK47은 한 번 털어주면 됐다.

소련이 해체되자 AK47 창고는 폭력 바이러스를 퍼뜨리는 판도라의 상자가 됐다. 국가 통제를 벗어나 헐값에 팔려나간 총은 르완다에서 인종 청소용 빗자루가 됐고, 콜롬비아에선 반군 FARC를 무장시켰다. 영화 '블랙호크다운'의 무대인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 시가전에서 미군 18명의 목숨을 앗아간 총도 AK47이었다. 복제품마저 성능이 뛰어나 가격이 10달러까지 떨어지자 건달들도 이 총을 사서 강도질을 했다. 용도가 갈수록 확대돼 혼인 지참금, 화폐로도 쓰였다. 모잠비크에선 한때 국기 문양이 되는 영광도 누렸다.

칼라시니코프도 말년에 큰 변화를 겪었다. 냉전이 끝나자 월 50달러 연금으로 살아가던 가난한 노인이 갑자기 온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1990년 첫 미국 여행에서 M16 개발자 스토너를 만난 그는 M16이 팔릴 때마다 스토너의 주머니에 1달러씩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영웅을 푸대접한 사실이 들통난 러시아는 칼라시니코프의 연금을 100달러로 올려주고 비서 겸 운전기사를 제공했다.

'칼라시니코프 문화'라는 독특한 현상도 생겨났다. 할리우드는 이 무기를 반영웅주의와 테러리즘 상징물로 은막에 등장시켰고, 캄보디아에선 예술가들이 "킬링필드의 아픔을 영원히 잊지 말자"며 이 총을 모아 조각품을 만들었다. 압권은 그의 이름을 사용한 보드카였다. 배우 줄리아 로버츠가 보드카 판촉에 동원됐다. 돈맛을 본 칼라시니코프의 말솜씨도 늘었다. "더는 전쟁에 관심 없다. 이제 내 군대는 보드카다. 세계가 건배를 더 많이 하고 전투를 더 적게 하면 좋은 세상이 될 것이다."

모든 열광을 지켜본 플레이보이는 2004년 '세계를 바꾼 소비재 50' 기사에서 AK47을 4위에 올렸다. 이 뒤늦은 스포트라이트가 칼라시니코프를 기쁘게만 한 것 같지는 않다. 그는 AK47을 만든 영웅이란 자부심을 움켜쥐고서 수많은 사람을 죽게 했다는 죄책감과 싸웠다. 돈 안 되는 훈장을 자랑하면서도 스토너처럼 금전으로 보상받고 싶은 갈망을 떨치지 못해 곤혹스러워했다. 혼란 속을 배회하는 칼라시니코프의 늘그막 모습이 책을 덮은 뒤에도 오랜 잔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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