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의 벽돌책] 싸우다가도 공동의 敵 만나면 협업한다

조선일보
  • 장강명 소설가
입력 2019.07.13 03:00

문명과 전쟁

장강명 소설가
장강명 소설가
한국이라는 특수한 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에 특수한 세계 인식을 지니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은 밤거리에 대한 두려움이 다른 나라 국민보다 옅은 것 같다. 전쟁에 대해서도 그렇다. 한국인 대부분은 전쟁을 경험한 적도 없으면서 자신들이 전쟁 중인 국가에 있다는 말은 귀에 못이 박이도록 자주 들었다. 그러다 보니 전쟁을 별것 아니라고 여기는 듯하다. 아자 가트의 '문명과 전쟁'(교유서가)을 다시 들춰보다 든 상념이다.

이 1064쪽짜리 벽돌책을 읽다 보면 문명의 기본 상태가 전쟁과 휴전의 반복이며, 종전은 천국이나 완전 고용처럼 개념으로만 존재하는 단어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의 내용을 한 줄로 요약하면 아마 '문명과 전쟁은 서로를 만들며 공진화(共進化)했다' 정도겠다. 그러나 이런 요약은 별 의미 없는 것이며, 책의 묘미는 방대하고 꼼꼼한 '어떻게'에 있다. 책은 무려 200만 년이라는 기간을 원시사회, 전근대, 근대 이후라는 세 부분으로 나눠 다룬다.

문명과 전쟁

텔아비브대학 석좌교수인 저자는 인류의 초기 상태가 결코 평화롭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거의 필연적이라고까지 보이는 원시 전쟁의 원인들을 하나하나 거론한다. 저자는 쉽게 탄식하는 대신 '인간을 포함한 모든 유기체가 동족과 폭력적으로 경쟁한다'고 냉정하게 지적한다. 동시에 책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간에는 전쟁이 잘 벌어지지 않는다는 가설을 세심히 점검하면서도 섣부른 낙관은 경계한다. 기마병이라는 신무기가 봉건제도를 낳았다는 등의 흥미로운 분석들이 그 사이를 빼곡하게 채운다.

빅뱅에서 시작하는 이른바 '빅히스토리' 도서들이 우주에서 굽어보는 지구를 보여주려 한다면, 이 책이 그리는 풍경은 대략 성층권 정도에서 내려다본 인간 사회일 것 같다. 그리고 그 높이에서만 포착되는 진실도 있다. 같은 이스라엘 저자인 유발 하라리의 책들과 비교하면 좀 더 딱딱하고 전쟁이라는 한 주제를 좀 더 깊이 파고드는 편이다.

무지막지한 두께와 쉽지 않은 내용에도 국내 출간 2년도 안 돼 9쇄를 찍었다. 교유서가 출판사의 최연희 실장은 "밀도와 열량이 높은 책"이라며 "팀을 짜서 세미나 형태로 읽고 소화하는 독자가 많다"고 전했다. 벅찬 상대를 만나면 인간은 협업한다. 전쟁도, 독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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