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 정복을 꿈꾼 부호들… "최고의 로켓 연료는 경쟁의식"

조선일보
입력 2019.07.13 03:00

일론 머스크와 제프 베이조스 등 우주개발 산업에 뛰어들며 경쟁
어릴 때부터 우주 동경했던 이들… 재사용 가능 로켓 개발 과정부터 선점 전략과 감정 싸움까지 담아

타이탄

타이탄

크리스천 데이븐포트 지음|한정훈 옮김|리더스북
504쪽|1만8000원

'우주판 삼국지(三國志)'라고나 할까. 1969년 아폴로 11호의 달 착륙 이래 지지부진한 성과를 보이고 있던 우주개발 산업에 진출하려 각축하는 대부호들의 이야기다. 원제는 '우주의 거물들(The Space Barons)'. 번역서 제목 '타이탄(Titans)'은 '거인들'이라는 뜻으로, 저자와 협의를 거쳐 출판사에서 새로 붙였다. 테슬라 창업자 일론 머스크,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 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 영국 버진 그룹 창업자 리처드 브랜슨 등 네 명이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무게 중심은 머스크와 베이조스 두 사람이 벌이는 경합에 있다. 워싱턴 포스트 기자인 저자가 각각 '자신만만한 토끼'와 '비밀스럽고 느린 거북이'에 비유한 머스크와 베이조스가 어떻게 각자의 전략을 구축하고 상대를 공격하는지가 관전 포인트다.

먼저 토끼부터. "대담하고 불가능해 보이는 목표를 세워라. 흔들리지 말고 앞만 보며 전진해라. 길을 개척해라." 머스크가 설립한 항공우주장비 제조업체 '스페이스 X'의 모토다. 31세인 2002년 이베이에 페이팔을 넘기며 1억8000만달러(약 2122억원)를 손에 넣은 머스크는 다음 목표를 궁리하다가 화성을 정복하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짓는다. 집단따돌림 당하던 어린 날 SF 소설을 읽으며 위로받곤 했던 머스크의 꿈은 우주여행의 상품화. 그는 우주 접근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기 위해 재사용 가능한 로켓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다. 스페이스X 창립 1년 만에 로켓을 제작했지만 NASA(미국항공우주국)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정치권에서도 무시당했다. "주목을 끌 수 없다면 직접 보여주겠다"고 결심한 머스크는 라이트형제 첫 비행 10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트레일러 뒤에 7층 건물 높이 로켓을 매달고 LA를 떠나 미 대륙을 횡단, 워싱턴 DC로 간다. 언제나 떠들썩하게 사업 추진 과정을 공개했으며, NASA가 공개입찰 대신 수의계약으로 사업 파트너를 정하자 불공정하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 4월 9일 워싱턴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블루 오리진의 달 착륙선 ‘블루문’ 실물 모형을 소개하고 있다.
제프 베이조스가 지난 4월 9일 워싱턴에서 열린 언론 간담회에서 블루 오리진의 달 착륙선 ‘블루문’ 실물 모형을 소개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느림은 부드럽고 부드러움은 빠르다." '거북이' 베이조스가 평생 가슴에 품은 말이다. 2000년 설립한 우주 로켓 기업 '블루 오리진'의 문장(紋章)엔 별을 향해 나아가는 한 쌍의 거북이가 그려져 있다. 베이조스는 다섯 살 때부터 우주에 대한 열정을 품었다. 인류가 달에 발을 디디는 장면을 TV를 통해 본 것이 계기였다. '우주 정복'을 주제로 고등학교 졸업 연설을 했다. 대학 시절엔 우주탐사 개발 동아리 회장을 지냈다. 머스크와 마찬가지로 재사용 가능한 로켓을 개발했지만, 그 과정은 철저히 비밀에 부쳤다. 조용하게 물밑 작업만 하던 거북이가 토끼에게 맹공을 가하기 시작한 것은 2013년. 머스크가 인수하려 했던 NASA의 39A 발사대 입찰에 뛰어들면서다. 아폴로 11호를 쏘아 올렸던 이 역사적인 발사대를 베이조스는 놓치고 싶지 않았고, "명예로운 발사대의 운영권을 한 회사에 독점적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며 소송도 불사했다. 베이조스의 도발에 머스크는 분노했고, 경쟁은 본격화된다.

승전고를 먼저 울린 쪽은 베이조스였다. 2015년 11월 23일 블루오리진의 로켓 뉴셰퍼드는 우주 경계선을 돌파했다가 꼭대기 캡슐을 낙하산의 유도하에 부드럽게 착륙시켰다. '재사용 가능한 화학로켓을 만들겠다'는 꿈이 회사 창립 15년 만에 이루어진 것. 그로부터 한 달이 채 안 된 12월 21일, 스페이스X의 팰컨 9호가 이륙 후 다시 착륙하는 데 성공한다. 우주시대가 도래한 후 50년 동안 지구 대기권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지구로 돌아와 착륙하는 로켓 부스터를 만든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 위업이 한 달 새 두 번이나 성취된 것이다. 베이조스는 "착륙 클럽의 가입을 환영한다"는 트윗을 올려 머스크를 조롱하지만, 이 둘의 감정싸움은 시간이 지나면서 잦아든다. 경쟁을 통해 서로가 발전해 왔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그랬듯, 최고의 로켓 연료는 경쟁의식이었다."(411쪽)

'미래는 꿈꾸는 자의 것'이라는 말을 상기시키는 책. 인물의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살리고, 에피소드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나간 덕에 소설처럼 속도감 있게 읽힌다. 저자의 직장인 워싱턴포스트 소유주 베이조스를 미화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도록 노력한 흔적도 엿보인다. 우주여행이라는 꿈에 대한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머스크는 최근 2023년엔 민간인을 태우고 달을 탐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며, 베이조스도 얼마 전 달 착륙 우주선 '블루문'을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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