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朝鮮칼럼 The Column] 한국 진보, 철 지난 포용 이론으로 미국 설득할 수 없다

조선일보
  •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입력 2019.07.13 03:12

北 포용, 한국 진보 인사 주장… 美 관리들에겐 공허하게 들려
北 도발하고 어떤 이슈 제기해도 강대국인 美가 참아야 한다는 것
미 중대 관심사는 중국 저지… 이해관계 맞아야 미국인들 공감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 석좌

지난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군사분계선(MDL)을 넘어 북한 땅을 밟고,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미니' 정상회담을 가졌을 때 워싱턴의 많은 외교·안보 전문가는 경악의 눈길로 바라봤다. 반면 문재인 정부와 가까운 한국의 진보 측 이론가들은 이런 트럼프에게 '대담하다'며 갈채를 보냈다. 그러면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과 그를 따르는 보수 매파·강경론자들이 북한에 대해 더욱 폭넓은 포용정책(engagement policy)을 고려하도록 해야 한다고 결의를 다지는 모습이다. 미 정부 관리들이 트럼프의 '즉흥적 결정'을 충실히 이행한다고는 하지만, (최근 미국을 방문한) 이 진보 인사들의 주장은 공허하게 들릴 수밖에 없다. 내가 정말 놀란 것은 미국이 북한을 더 포용해야 한다고 미국인들에게 설명할 때, 이 진보 인사들이 한결같이 잘못된 주장만을 내놓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에게 새로운 포용 이론이 필요한 이유이다.

지난 2월 트럼프와 김정은의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를 감안할 때, 진보 측 인사들의 긴급 현안은 어떻게 하면 트럼프 행정부가 제재를 완화하도록 하느냐였다. 제재 완화는 하노이 회담 때 김정은의 핵심 요구 사안이었다. 물론 이번 판문점 회담 때도 틀림없이 거론됐을 것이다.

진보 측이 주장하는 포용의 내용은 언제나 똑같다. 4가지다. 첫째, 북한이 제재와 평화 조약, 연락사무소 등 어떤 이슈를 제기하든, 미국은 융통성 있게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둘째, 북한엔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압박이 잘 통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셋째, 북한이 도발을 감행할 때도 북한이 원하기 때문에 미국이 관심을 가져줘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 북한 요구가 아무리 비합리적이라도 미국은 강대국이기 때문에 좀 더 유연해야 하고, 협상에서도 너그러워야 한다는 것이다.

진보 측의 이런 포용 주장은 미국이 갖고 있는 전략적 사고의 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은 북한을 화해의 파트너가 아니라, 긴급하고 중대한 안보 위협이라고 본다. 북한이 당면한 걱정거리는 맞지만, 미국이 오래 계속하게 될 진짜 게임은 중국과의 전략적 경쟁 관계와 관련이 있다. 한국 진보가 미국 매파들에게 어필하고자 한다면 당장 남한 사람처럼 생각하는 걸 중단하고, 미국인처럼 생각하기 시작해야 한다.

이런 맥락을 감안할 때, 포용 주장은 다음과 같은 식이 돼야 한다. 우선, 아시아에서 중국은 미국에 장기적인 전략적 위협이다. 이 주도권 싸움에서 아주 중요한 조각이 바로 한반도이다. 역사적으로, 한반도가 불안정하거나 유동적인 상태에 빠지면 미국의 이해에 도움이 되지 않았다. 중국은 서서히, 하지만 확실하게 북한에 대한 전략적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중국이 북한과 연결한 철로는 남한의 두 배를 넘는다. 중국은 남북 경협이 중단된 동안에도 북한과 연결되는 새로운 교량들을 건설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과 관련, 북한에 재정 지원을 시작할 것이다. 지난 6월 북·중 정상회담에서 중국은 김정은에게 주민을 더욱 잘 통제하는 수단으로 안면 인식 및 생체 측정과 관련된 기술을 소개했다.

한국의 진보 인사들은 포용 정책이 한반도에 대한 중국의 점증하는 영향력을 무디게 하고, 미국이 아시아에 장기적인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한 든든한 방어막이 될 수 있다고 주장해야 한다. 또, 중국이 북한을 집어삼키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는 증거도 제공해야 한다. 북한의 나쁜 행태를 감안할 때 포용 정책은 별로 내키지 않는 정책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통일 한국으로 향하는 토대를 놓을 것이다. 그 토대는 중국에 의해 좌우되지 않고, 미국과 발을 맞추는 것이어야 하며 미국의 장기적인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지는 것이어야 한다.

일부 진보 측 인사는 김대중 대통령도 빌 클린턴 대통령과 손잡고 포용 정책을 구사했다고 주장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미국 입장에서 주요한 경쟁자인 중국에 대한 걱정은 25년 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르다. 지난해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중국에 대해 연설한 이후, 미국 내 대부분의 정책 전문가와 관료들, 경제인들은 베이징과의 전략적 경쟁 관계가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런 주장이 모든 워싱턴 인사들의 지지를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진보 진영의 낡은 것보다는 훨씬 더 많은 미국 사람의 공감을 이끌어 낼 것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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