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미 우물에 독 퍼졌는데 독 덜 탄다고 무슨 의미 있나"

조선일보
입력 2019.07.13 03:13

내년도 법정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2.87%(240원) 오른 8590원으로 결정됐다.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공익위원들이 12일 최저임금위에서 사용자 측 안(案)에 손을 들어주면서 외환 위기 사태와 글로벌 금융 위기를 빼고는 가장 낮은 인상률로 정해졌다. 2년 연속 두 자릿수의 과속 인상엔 일단 제동이 걸렸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들을 초토화시켜 놓고 뒤늦게 인상률을 낮춰봤자 무너진 서민 경제가 다시 살아날 리도 없다. 2년간 최저임금이 29.1%나 올랐으니 내년 인상률이 2%대에 그쳐도 3년간 32.7% 오른 셈이다. 주휴수당까지 합치면 내년 실질 시급은 1만300원에 달해 소득 대비 OECD 최고 수준이다.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미 우물에 독이 퍼졌는데 독을 더 타느냐 덜 타느냐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했다.

애초 '3년 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라는 대통령 공약은 현실적으로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약속이었다. 그런데도 정부는 "임금을 올리면 소비가 늘어 성장이 촉진된다"며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 실험을 강행했다. 인건비 부담이 가파르게 오르자 정부 의도와 반대로 일자리가 사라지고 영세 자영업자 폐업 사태가 벌어졌다. 소득 하위 20% 계층의 근로소득이 2년새 25.9%나 줄어 소득 양극화가 심화되는 악순환이 빚어졌다. 급기야 여권에서 속도 조절론이 나오고 문재인 대통령이 공약을 지키지 못하게 됐다고 실토하더니 결국 내년 인상률을 2%대로 낮추었다. 최저임금 1만원이 무산되자 노동계는 장외투쟁을 선언했고, 소상공인 측도 업종별·규모별 차등화 요구가 수용되지 않았다며 투쟁하겠다고 한다. 모두가 불만이다.

최저임금 인상에 제동이 걸렸다는 건 소득 주도 성장이 실패했다는 뜻이다. 정부가 대통령 공약 포기를 감수하고 급격한 인상을 그만둔 것을 달리 해석할 수 없다. 정부는 여전히 소득 주도 정책을 고수하겠다고 하지만 고집일 뿐이다. 주 52시간 근무제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탈원전, 문재인 케어, 4대강 보 철거 등 감당 못 할 공약도 재검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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