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日규제 속타는 디스플레이 업계 "삼성·LG도 위기...납품 구조상 언제든 직격탄"

입력 2019.07.14 06:00

충남디스플레이 산업 발전 워크숍’ 가 보니
"수출 규제 3종 아니어도 긴밀히 연결돼 있는 납품 구조상 언제든 직격탄"

국산 소재로 디스플레이 부품을 만드는 A사 구매팀 담당자는 일본 수출 규제 관련사항을 점검하던 중 협력회사가 일본에서 원재료를 구해 소재를 만들어 납품한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A사 대표는 "그동안 협력사가 어디서 재료를 조달하는지 챙기지 않았지만, 지금은 규제가 확산돼 재료 수급이 차질을 빚을 수 있다. 우리도 타격을 입을 수 있는 만큼 신경 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본에서 핵심 부품을 조달해 디스플레이 장비를 생산하는 B사는 일본 수출 규제와 무관하지만 국내에 판매하는 장비의 생산을 무기한 중단했다. B사 관계자는 "‘민감한 시기에 굳이 일본에서 부품을 받아 장비를 만드냐’는 비판이 나올 수 있어 지켜보고 있다"면서 "해외 사업만 정상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11~12일 충남 태안군에 모인 디스플레이 산업계 종사자 200여명은 "사슬처럼 연결된 소재·부품·장비 특성상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위기는 언제라도 올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윤종언 충남테크노파크 원장이 충남 태안군에서 열린 ‘15회 충남디스플레이 산업 발전 워크숍’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윤 원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는 ‘위험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충남테크노파크
윤종언 충남테크노파크 원장이 충남 태안군에서 열린 ‘15회 충남디스플레이 산업 발전 워크숍’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 윤 원장은 “일본의 수출 규제는 ‘위험한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충남테크노파크
일본 수출규제로 조만간 생산 차질이 우려되는 삼성디스플레이·LG디스플레이의 위기를 체감하기 시작했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디스플레이 장비회사 C사 관계자는 "가뜩이나 불경기로 국내 대형 패널사들이 투자를 안 하고 있는데, 일본 수출 규제까지 터지면서 장비 수주가 기약이 없게 됐다"며 "중국 업체들이 그나마 투자를 하고 있어 최대한 비용을 절감해가며 버텨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4일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요한 소재인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 포토 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3개 품목의 수출 규제를 시작했다. 일본산에 70~90%를 의존하고 있는 핵심 소재들이다.

회의장 밖에서 만난 참석자들의 의견은 분분했다.
"한국의 핵심 소재를 쥐고 있는 일본의 침략이다."(충남 소재 디스플레이학과 교수)
"위기이자 기회다. 위기는 대기업에게 리스크가 된다는 점에서, 기회는 국내 업체들의 기술 개발·고도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윤종언 충남테크노파크 원장)

디스플레이 관계자들이 한자리에 모인 이유는 올해 15회째를 맞은 ‘충남디스플레이산업 발전 워크숍’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산·학·연·관 관계자들이 총집결하는 행사는 디스플레이 산업 기술 투자·개발 동향을 공유하기 위해 매년 열린다.

충남은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아산)과 주요 협력업체들이 집결해 있어 LG디스플레이의 주력 생산거점인 경기도 파주와 함께 ‘디스플레이 양대산맥’으로 꼽히는 곳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 3300만화소의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8K QLED TV가 전시돼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올해 2분기 잠정 매출액이 56조원, 영업이익이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디스플레이 사업부문은 일회성 이익을 제외하면 적자를 이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딜라이트 홍보관에 3300만화소의 초고해상도 디스플레이가 적용된 8K QLED TV가 전시돼 있다. 삼성전자는 최근 올해 2분기 잠정 매출액이 56조원, 영업이익이 6조5000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디스플레이 사업부문은 일회성 이익을 제외하면 적자를 이어간 것으로 분석된다. /연합뉴스
워크숍은 플렉서블(화면이 휘어지는) 디스플레이 시장 전망,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산업 분석, 연구 장비 공동 활용 및 기업 지원 사업 등에 대한 강연이 열렸다.

하지만 질의응답에서는 ‘소형 OLED 증착 공정에 필수적으로 사용되는 섀도마스크는 일본에 100% 의존하고 있는데, 이것마저 규제되면 난리가 나는 것 아니냐’, ‘이번 규제 대상에 포함된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를 코오롱인더스트리 등에서 대체 생산할 수 있다고 하는데, 일본산보다 기술력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잇따랐다.

이들의 최대 관심사는 ‘일본 수출 규제로 디스플레이 업계는 안전한가, 해법은 무엇인가’였다. 정병락 충남도 미래산업국장은 디스플레이 소재·부품·장비사 대표들을 별도로 만나 ‘일본 수출 규제로 인한 애로사항’에 대해 청취했다.

정 국장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았지만, 이번 규제는 ‘금수 조치’가 아니라 수출 허가 절차를 밟게 하는 것인 만큼 단기적으로는 업체들이 미리미리 발주를 하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며 "중장기적으로는 국산업체들을 발굴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11일 저녁 워크숍 뒷풀이에는 양승조 충남도지사가 방문해 10여명의 디스플레이 업계 대표들과 함께 비공개 간담회를 가졌다. 한 관계자는 "양 지사가 이미 업계 의견을 취합해 알고 있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30분 정도 짧게 관련 현황을 공유하는 자리였다"고 전했다.

워크숍 참석자는 "수출 규제가 장기화하거나 확산할 경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다. 체감하는 위기는 더 심각하다는 것을 공감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일본 수출규제가 터지자 정부가 업계를 지원하는 분위기로 돌아섰지만, 국산화를 해야할 이유는 원가절감 정도밖에는 없을 것"이라며 "기술력 향상과 함께 일본에 비해 비해 떨어지는 운영 노하우, 비상시 대처 등 종합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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