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금융제재 시 3대 위험요소는 '환율·신용·유동성'

입력 2019.07.14 08:00

"환율 상승에 따른 외자 유출 가능성 배제 못해
신용도 하락으로 자금조달 어려움 겪을 수도
금융제재 가능성 배제 말고 미리 대비해야"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 경제에 어떤 타격을 입힐지를 놓고 우리 정부와 기업이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급소를 찔린 반도체나 반일 감정 확산으로 어려움이 예상되는 항공·여행업은 당장 큰 타격이 예상된다.

금융업을 놓고는 전망이 엇갈린다. 우리 금융당국은 일본의 경제 보복이 한국 금융시장에는 별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하지만 몇몇 전문가는 일본계 자금이 움직이면서 외환시장에 영향을 주면 마치 나비효과가 일어나듯 한국 금융시장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대기업 총수와 CEO(최고경영자)를 불러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30대 대기업 총수와 CEO(최고경영자)를 불러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논의하기에 앞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3개월 안에 환율 상승에 따른 급격한 외자 유출 발생할 수도"

신세돈 숙명여대 경제학부 명예교수는 일본의 경제 보복이 원화 환율 상승을 부추길 수 있다고 내다봤다. 한국에 들어와 있는 일본계 자금이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원화로 돼 있는 자산을 달러화로 바꿔야 하는데 이 때문에 환율이 상승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지난 6월 하순 달러당 1150원대에 거래되던 원화 환율은 지난 8일 1180원을 넘겼다. 일본계 자금이 빠져나간 영향이라고 보기는 힘들지만 한일 간의 갈등이 환율 상승의 원인 중 하나라고 보는 시각이 많다.

신 교수는 "한국에 있는 일본계 자금의 10% 정도만 빠져나가도 외환시장이 크게 요동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결국 환율이 더 올라갈 가능성이 크다"며 "환율이 오르면 환차손을 우려한 다른 국가의 투자자들도 한국에서 자금을 회수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 1200원을 마지노선으로 봤다. 그는 "우리 정부가 1200원에서 방어선을 구축해 환율 상승을 막을 수 있을지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라며 "외국의 투기자본이 한국 외환시장을 공격하는 시나리오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앞으로 3개월 안에 환율 상승에 따른 급격한 외자 유출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실제로 최근 환율은 오름세다. 수출이 마이너스를 기록하고 있고, 무역수지도 좋지 않고, 기준금리도 당분간 오를 가능성이 크지 않다. 여러가지로 환율이 오를 여지가 많은 건 사실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서강대 석좌교수)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일본은 국제금융시장에서 풍부한 자금력을 가진 순채권국이다. 그들의 움직임은 국제금융시장에 상당한 파급효과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이 주요국에서 조달한 여신 현황. /KB증권
한국이 주요국에서 조달한 여신 현황. /KB증권
반면 환율로 인한 위기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는 전문가도 많다. 강태수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제 보복이 환율 상승과 맞물려 국내에 있는 외국계 자금이 급격하게 유출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있지만 현실성은 없다"며 "환율이 오르면 주식 자금은 빠져나가겠지만 외국인 투자자 입장에서는 한국 국채를 싸게 살 기회여서 채권시장에는 오히려 자금이 들어온다"고 말했다.

이윤석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도 "일본 경제 보복이 한국 외환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려면 다른 국제투자은행들과 함께 움직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효과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며 "기본적으로 이번 일 자체가 (일본에서) 선거를 염두에 둔 차원이라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용·유동성' 위기 가능성도 적지 않아

일본의 경제 보복이 결국에는 한국 기업의 신용도를 갉아먹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당장 일본계 자금이 한국에서 빠져나가는 것보다 신용도 하락이 좀 더 현실적인 문제라는 지적이다. KB증권은 "(일본의) 수출 규제가 국내 경기 부진과 환율 등 매크로 변수의 불확실성 확대로 이어질 경우 국내 은행의 신용리스크가 커질 것"이라며 "수출규제가 산업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면서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 기업의 신용리스크가 증가할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한국 기업이나 은행이 외국에서 자금을 조달하는 비용 자체가 늘어나 경영에 부담이 된다. 또 일본 신용평가사가 한국 기업에 직접적으로 부정적인 평가를 내릴 수도 있다. 일본의 대표적인 신용평가사인 R&I는 일본 정부의 입김이 센 것으로 알려졌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일본 신용평가사가 한국 기업에 대해 평가를 박하게 하거나 불이익을 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며 "무디스 같은 글로벌 신용평가사가 한일 간의 갈등 때문에 한국 경제에 대한 전망을 하향 조정하는 것도 이런 영향이 있다"고 말했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오른쪽) 일본 총리가 6일 오사카(大阪)의 한 상점가에서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여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참의원 선거 유세에 나선 아베 신조(安倍晋三·오른쪽) 일본 총리가 6일 오사카(大阪)의 한 상점가에서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여 손을 흔들고 있다. /연합뉴스
일본계 자금의 이탈로 인한 유동성 위기 가능성도 없지는 않다. 특히 일본계 자금을 많이 쓰고 있는 비은행금융기관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한국이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 중 일본계 자금 비중은 18.1%로 미국(26.8%), 영국(26%) 다음으로 많다. 특히 비은행금융기관이나 비은행금융기관외 등은 해외에서 조달한 자금 중 일본계 자금 비중이 25~26% 정도로 평균을 웃돈다.

장재철 KB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2008년 서브프라임 사태 이후, 2012년 독도분쟁 이후에 각각 은행과 민간에서 일본계 자금이 많이 이탈한 적이 있다"며 "금융부문에서 한국의 일본 의존도는 미국이나 영국보다는 낮지만 무시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장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일본이 금융제재를 가할 경우 상대적으로 일본 여신 규모가 큰 증권 및 보험회사 등 비은행금융기관에서 자금 경색이 나타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제재 당장은 아니어도 미리 대비해야

지금 당장은 일본이 우리 금융산업을 노린 제재를 내놓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하지만 애초에 일본이 수출 규제를 내놓은 것부터가 예상을 깬 조치였던 만큼 금융 분야에 대해서도 마냥 손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조언이 많다.

강태수 선임연구위원은 외환당국과 중앙은행이 시장과 소통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장이 루머에 휘둘리지 않도록 당국이 명확하게 입장을 밝혀줘야 한다"며 "루머가 돌아다니는데도 당국이 손 놓고 있으면 루머가 사실로 굳어지게 되는 만큼 소통이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김광두 원장도 "보이는 것보다는 보이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데 금융은 잘 안 보이는 특성을 갖는다"며 "개방적 자세로 지혜와 정보를 모아 리스크를 관리하려는 당국의 자세가 필수"라고 말했다.

이지평 위원도 "반도체에 대한 공격이 1단계고, 화이트리스트 국가에서 한국을 빼는 게 2단계 공격이라면 금융에 대한 공격은 3단계에서 이뤄질 것"이라며 "일본 내부에서는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에 찬성하는 여론이 많은 만큼 금융은 안전하고 별 문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미리 점검하고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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