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구미공단 눈물…삼성·LG 떠나자 中企도 휘청, 가동률 32.2%로 추락

입력 2019.07.14 07:00 | 수정 2019.07.15 19:38

경북 구미산업단지 전경.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경북 구미산업단지 전경. /한국산업단지공단 제공
"5월에 화의(和議) 신청하고, 남은 물량은 LG전자에 반납했습니다."

지난 30년 동안 경북 구미산업단지(구미공단)에서 TV 인쇄회로기판(PCB)을 생산한 진성전자. 이 회사는 올해 5월 회사 경영이 어렵다고 판단, 화의를 신청했다. 화의는 기업이 파산·부도 위험에 직면했을 때 법원의 중재를 받아 채권자들과 채무 변제협정을 체결해 파산을 피하는 제도다.

진성전자는 1989년부터 TV 인쇄회로기판을 생산해 구미 LG전자에 납품했다. 삼성전자의 4세대(4G) 휴대전화 안테나에 들어가는 인쇄회로기판 물량도 따냈다. 그러나 삼성과 LG가 공장을 해외로 이전하면서 물량이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에는 LG전자 물량이 2017년과 비교해 35% 급감했다.

최저임금이 지난 2년간 30% 가까이 오른 것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인상된 인건비가 납품단가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서길호 진성전자 사장은 "LG전자 측에서 2014년 원가절감을 이유로 납품단가를 30% 넘게 깎았다"며 "물량은 줄고 인건비는 오르지만 납품단가는 오히려 떨어져 제품을 생산할수록 손해만 쌓였다"고 말했다. 진성전자는 지난해 영업손실 15억원을 기록했다.

◇中企 경영 악화…대기업과 분쟁도 발생


13일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구미공단 전체 공장의 평균 가동률은 72%였다. 2016년 4월(75.9%)과 비교해 3.9%포인트 떨어졌다. 같은 기간 직원 수가 50인 미만인 기업의 공장 평균 가동률을 보면 81%에서 32.2%로 급감했다. 3년 사이 가동률이 무려 절반 이상으로 뚝 떨어졌다.

공단 생산 실적은 올해 4월 3조3160억원으로 2016년 4월(3조6966억원) 대비 3000억원 이상 감소했다. 공단에서 근무하는 인력도 9만1959명에서 8만6246명으로 줄었다.

구미공단 내 중소기업 경영이 악화하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분쟁도 일어나고 있다. 구미공단에서 지난 10년간 LG전자에 TV 부품을 납품한 미광전자는 2017년 1월 사업을 접었다. 황선도 미광전자 사장은 "물량은 줄고 납품단가는 계속해서 떨어지는 상황을 도저히 버틸 수 없었다"고 말했다. 황 사장은 폐업 3개월 뒤 공정거래위원회에 "LG전자가 2013~2014년에 40% 이상 납품단가를 깎았다"며 부당하도급 행위를 신고했다. 이에 LG전자는 황 사장을 자사 영업비밀 유출로 검찰에 고발했다. 황 사장과 LG전자 간 소송은 현재 진행 중이다.

구미공단에서 만난 중소기업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삼성과 LG가 공단을 떠날 줄 몰랐다"고 했다. 삼성전자는 2010년 구미공장에서 생산하는 휴대전화 물량을 베트남으로 대거 옮겼다. LG전자는 폴란드·멕시코·러시아 등 해외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구미공장 TV 물량을 줄였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2000년대 중반 생산 거점을 구미공단에서 경기도 파주로 옮겼다.

그나마 상황이 나은 곳은 삼성, LG와 함께 해외로 나간 기업들이다. LG디스플레이에 액정표시장치(LCD) 모듈을 납품하는 케이알이엠에스는 LG디스플레이를 따라 2013년 중국, 2016년 베트남에 생산공장을 건설했다. 그 결과 구미공단에서 생산하는 물량이 40%가량 줄었다. 이영태 케이알이엠에스 사장은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사업을 5년 전에 시작했고, 해외로 넘긴 LG디스플레이의 LCD 모듈 물량을 LED 조명 사업이 대체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삼성전자 협력업체인 KH바텍 역시 삼성전자를 따라 중국과 베트남에 공장을 세웠다. 현재 구미공단 내 KH바텍 3개 공장 중 1공장만 가동 중이다. KH바텍 관계자는 "2, 3 공장은 가동을 멈췄고 현재 건물 관리만 하고 있다"고 말했다.

경북 구미산업단지 1공단로에 있는 한 공장부지. 무너질 것 같은 안내소 앞 유리에 ‘공장 신속처리!’라고 적힌 종이 팻말이 붙어 있다. 이 공장부지는 현재 무료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용선 기자
경북 구미산업단지 1공단로에 있는 한 공장부지. 무너질 것 같은 안내소 앞 유리에 ‘공장 신속처리!’라고 적힌 종이 팻말이 붙어 있다. 이 공장부지는 현재 무료 주차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박용선 기자
◇‘전자 산업의 메카’는 옛말…"현상 유지 급급"

구미공단에서 21년간 대경테크노를 운영한 곽현근 사장(구미중소기업협의회 회장)은 "과거 ‘전자 산업의 메카’라고 불리던 구미공단이 무너지고 있다"며 "현재 남은 중소기업들은 현상 유지에 급급하며 인력을 줄이고 있다"고 말했다.

대경테크노는 현재 직원 160여명을 두고 있다. 매년 직원 10명가량을 신규 고용했지만 올해는 채용 계획이 없다. 오히려 직원을 줄여야 할 상황이다. 근무 시간도 줄였다. 올해 상반기 물량이 2017년 상반기보다 30%가량 감소했기 때문이다.

곽 사장은 "지난해 평일에는 잔업 2시간, 주말(토·일요일)에는 특근 8시간을 했는데 올해는 물량이 줄어 잔업과 특근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곽 사장은 또 "구미공단에서 대기업이 이탈하면서 젊은이들이 구미를 떠나고 있는 것도 문제"라면서 "구미공단 내 기업의 경영 상황이 좀처럼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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