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너 맞고 사냐" "국적 노린 사기꾼"...이주여성들, 편견에 또다시 눈물

입력 2019.07.12 16:12 | 수정 2019.07.12 16:29

영암 베트남 아내 폭행 사건 이후
"맞고 사냐" 편견 시달리는 이주여성들
베트남 여성 "‘국적 노린 사기꾼’이라는 말에 눈물"

"고향에 있는 엄마, 친구들한테 ‘너 맞고 사느냐’는 전화를 수십 통 받았습니다."

지난 11일 오전 11시쯤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 베트남·중국·필리핀 국적 여성 5명이 한국어 교육을 받기 위해 지원센터에 나와 있었다. 2014년 결혼해 한국으로 들어온 베트남 출신 홍(Hong·28)씨는 "폭행 사건은 안타깝지만, 이번 사건으로 다문화가족 이주여성에 대한 편견이 생길까 봐 두렵다"며 "화목하게 잘살고 있는 여성들까지 전부 매 맞는 아내로 생각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영암에선 베트남 이주 여성이 남편에게 무차별 폭행을 당하는 사건이 알려져 온 동네가 발칵 뒤집혔다.

11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영암=최효정 기자
11일 전남 영암군 삼호읍의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이주여성들이 아이를 돌보고 있다. /영암=최효정 기자
이날 센터에서 만난 이주여성들은 "상황이 안타깝지만, 극히 일부의 사건 때문에 대다수가 오해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고 입을 모았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졸지에 한국인 남편은 ‘가해자’, 이주여성인 자신은 ‘피해자’가 됐다는 것이다.

2015년에 한국에 온 베트남 출신 안(An·27)씨는 "남편 친구들 사이에서도 농담이지만 ‘너 혹시 아내를 때리냐’는 말이 오갔다고 해서 기분이 나빴다"며 "5년째 한국에서 살고 있지만 베트남 여성이 이렇게 심한 폭행을 당한 경우는 정말 처음 봤다"고 했다.

지난 10일 베트남아내폭행사건 피해자 여성에 한국 국적을 주지 말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사이트
지난 10일 베트남아내폭행사건 피해자 여성에 한국 국적을 주지 말자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올라왔다. /청와대 사이트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주 여성에 대한 여론이 악화된 것도 걱정이다. 피해 여성 A(30)씨가 베트남 현지 매체 인터뷰에서 "한국에 체류하고 싶다"고 밝히자 "국적 취득을 노린 저의가 의심되니 절대 한국 국적을 주지 말라"는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왔다. 지난 10일부터 시작된 해당 청원에는 12일 현재 약 2만2000명이 동의했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에도 "폭행도 죄지만 여자도 베트남으로 가라" "국적을 얻고 이혼하려고 일부러 남편을 화나게 해 영상을 찍은 것" 등 댓글이 달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영암 내 베트남 국적 이주 여성들은 더 위축된 상태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베트남 이주 여성은 "국적을 노린 사기꾼이라는 댓글을 보고 눈물이 났다"며 "우리 부부는 서로 사랑하고 아이들도 행복하게 잘살고 있는데, 밖에서는 우리는 불행하다고 말하니 안타깝다"고 했다.

지원센터 관계자는 "박항서 베트남 축구 감독의 활약으로 한국과 베트남의 관계가 좋아지면서, 그 어느 때보다 베트남 이주 여성들의 분위기가 좋았다"며 "국적을 노리고 건너온 사기꾼이라며 비난하는 시선에 이주 여성들이 매우 힘들어하는 상황"이라고 했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김모(36)씨가 지난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베트남인 아내를 폭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 남편 김모(36)씨가 지난 8일 광주지법 목포지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받고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영암군은 국가가 지정한 ‘외국인 집중 거주 지역’ 69곳 가운데 한 곳이다. 전체 인구 5만 4831명 가운데 4047명(7.38%)이 외국인으로, 전남 지역에서는 인구 대비 외국인 비율이 가장 높다. 외국인 집중 거주 지역은 외국인 주민이 1만명 이상 또는 인구 대비 5%이상 거주하는 시·군·구를 말한다.

영암에 외국인이 몰리는 배경은 조선업 협력업체가 밀집한 대불국가산업단지(대불산단)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가 많고, 공단에서 일하는 한국인 남성과 결혼한 이주여성이 많기 때문이다.

올해 1월 기준 영암의 다문화가정은 494세대다. 이중 베트남 국적을 가진 이주여성이 190세대(38%)로 가장 많았다. 중국(129세대), 필리핀(83세대), 일본(32세대) 등이 뒤를 이었다.

이러한 현상은 영암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다문화 인구동태 통계’ 자료를 보면 전국 이주 여성 국적으로는 베트남이 27.7%로 가장 많았고, 중국(25.0%), 태국(4.7%) 순이었다. 베트남 아내는 2016년 처음으로 중국을 앞지른 이후 2017년에는 그 격차를 벌렸다. 2000~2017년 한국 남성과 베트남 여성 간의 국제결혼 누적 건수는 9만 3000여 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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