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쓴 評傳 "미안해요, 아버지"

입력 2019.07.13 03:00

[아무튼, 주말- 魚友야담]

어수웅·주말뉴스부장
외람되지만, 자서전 쓰기에 대한 강의를 한 적이 있습니다. 보람도 컸지만 수강생과 강사 사이의 격차를 확인하는 자리이기도 했죠. 수강생 대부분은 자랑하고 싶은 장면을 내세우고 싶어 했고, 강사는 치부의 고백과 반성이 더 가치 있다 했으니까요. 요컨대 자랑으로 점철된 자기 고백이라면, 자신 말고 누가 읽고 싶겠느냐는 것.

이번 주 읽은 책으로 박서보(88) 화백의 일생을 기록한 '권태를 모르는 위대한 노동자'가 있습니다. 엄밀히 말해 자서전은 아닙니다. 홍익대에서 예술학을 전공한 큰딸 박승숙씨가 권한을 위임받고 쓴 일종의 평전(評傳)이죠. 팔은 안으로 굽는다는 예단으로 펼쳤는데, 의외로 이런 구절이 있었습니다.

"노구(老軀)로 더는 작업을 하기 힘들어서 다른 사람의 힘을 빌렸다고 그냥 인정하세요. 아버지가 노년을 스스로 부정하고 자꾸 안 늙었다고 우기니까 뭘 숨기는 것처럼 보이는 거예요."

박서보는 한국 단색화의 대표 작가 중 한 명입니다. 2년 전인가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묘법(描法)'이 약 15억원에 낙찰되며 장르 최고가를 기록했죠. 전성기 박서보의 키워드는 '자기 수양'. 이런 작업입니다. 흰색 물감 바른 캔버스에 연필로 반복해 선을 긋고, 다시 그 위에 흰색 물감을 발라 선을 지우죠. 지우고 긋고를 수차례 반복하면, 겹겹이 쌓이는 물감층에서 과거의 잔상이 희미하게 올라옵니다. 시간으로 완성하는 인내와 수련의 작업.

하지만 60대 후반의 심근경색 응급실행 이후, 작가는 조수를 뒀습니다. 많은 부분을 의존했죠. 그러면서도 '자기 수양' '정신과 행위의 합일' 등의 표현을 내려놓지 않아 비판받았습니다. 딸은 묻습니다. "조수들 손을 빌린 게 마음에 걸리세요?" 아버지는 변명하죠. "해외 유명 작가들도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는다. 나만 그런 게 아니다." 다시 딸이 반박합니다. "수없이 긋는 반복 행위를 강조하며 그것을 자기 수신이라고 강조했는데, 행위는 이제 다른 사람이 하니까 다른 설명을 해야 마땅하잖아요."

치부(恥部)의 고백은 물론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자서전은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수신(修身)하기 위해 쓰는 거라 생각합니다. 초창기 '묘법'이 그랬던 것처럼. 부녀(父女)의 티격태격을 통해 스스로를 돌아보는 주말 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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