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 안병현

태양을 처음 본 사람은 그걸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모를 겁니다. 그러나 그날 밤 달을 보고 나면 태양의 밝음과 뜨거움에 놀라게 되겠죠. 인간은 무언가를 이해하기 위해 본능적으로 비교합니다. 문제는 상대방을 내 경험 울타리에 가두는 조급하고 불안한 비교. 그 울타리를 의식적으로 넓혀주고 마침내 활짝 열어주는 것이 진정한 어머니의 사랑이겠지요.

홍여사

"비결이 뭐예요, 언니? 저한테도 좀 전수해주세요."

오랜만에 남동생 부부와 식사를 하게 된 지난주의 일입니다. 애교 많은 올케는 그날도 저를 살갑게 부르며 연방 '듣기 좋은 말'을 건네더군요. 어떻게 하면 아들을 그렇게 '반듯하게' 키울 수 있느냐고 말입니다. 이제 막 반항을 시작했다는 본인의 아들에 빗대며, 모범생 아들을 키우는 언니는 남자애들 사춘기가 뭔지도 모를 거라더군요. 가만히 듣고 있기가 민망해서 제 나름의 방법으로 화제를 돌렸습니다.

"그 대신 우리 집엔 대단한 둘째가 있잖아. 날마다 사람 놀라게 하는 우리 귀여운 꼴통."

올케도 웃고, 저도 웃었습니다. 고 녀석도 결국은 형을 닮아갈 거라는 올케의 말에 저는 '글쎄, 과연 그럴까?' 했죠.

바로 그때입니다. 말없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남동생이, 정색을 하고 엉뚱한 말을 하더군요.

"누나 꼭 엄마 같네."

"응…?"

"삼십 년 전의 우리 엄마 같다고. 이웃 아줌마들이 누나 칭찬을 그렇게 했었잖아. 공부도 잘하고 야무지다고. 그때마다 엄마가 뭐라셨는지 알지? 그 대신 우린 둘째가 두 몫 하는 농땡이잖아. 점수 보면 기가 차. 내가 모를 줄 아셨겠지만 나도 다 듣고 있었다고."

동생의 표정은 묘했습니다. 작심하고 하는 말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농담으로만 들어넘기기엔 싸한 데가 있었지요. 당황한 올케가 주섬주섬 메뉴판을 들었다 놨다 하며 분위기를 바꿔보려 했지만, 동생은 이참에 할 말을 다 해버릴 기세였습니다.

"난 그때 내가 진짜 꼴통인 줄 알았는데, 커서 돌이켜보니까 늘 중상위권을 맴돌았더라고. 사고 한 번 친 적 없고. 내가 보기엔 누나네 작은놈도 멀쩡한 녀석이야. 잘난 형을 잘못 만나 고생이지. 아니, 엄마를 잘못 만났나?"

그쯤에서 동생은 애매한 미소로 말을 멈췄고, 저도 무어라 반박을 하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맛있는 코스 요리를 끝까지 잘 먹고 웃으며 헤어졌지요. 집에 돌아오는 차 안에서야, 동생에게서 들은 뾰족한 말들을 곱씹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엄마는 정말 그런 말을 자주 하곤 했습니다. 공부 못하는 천방지축 둘째 때문에 심란하다고요. 그러나 이상하게도 저는 엄마가 동생을 차별한다거나 인정해주지 않는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오히려 그 천방지축이라느니, 농땡이라느니 하는 말 속에 무한한 애정이 깃들어 있다고 느꼈었죠. 동생은 절대 수긍하지 않겠지만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건 오히려 저라고 생각했답니다. 겉으로는 말 안 하는 엄마의 진짜 생각을 저는 알고 있었거든요. 둘째는 비록 공부는 뛰어나지 않아도 정이 많고 재주가 많아서 어디 가나 인기가 있을 것이다. 그에 비해 큰애는 공부밖에 모르는 소심한 완벽주의라 사람들과 편히 어울리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런데 이제 보니, 엄마의 예측은 다 빗나갔습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던 동생은 어려운 전공의 학위를 따고, 유학까지 했습니다. 바깥일은 잘하겠지만 살림이나 육아는 젬병일 거라던 저는 아들 둘 키우는 전업주부로 십 년째 살아오고 있습니다. 1등 딸이 일찌감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둘이나 낳고, 미련 없이 직장을 그만두었으니…. 그때마다 엄마는 충격을 받으셨죠. 엄마의 기대로부터 멀어지는 삶을 살아간다는 것은 자식으로서 뼈아픈 일이면서 한편으로는 통쾌한 일이기도 했습니다. 아마 동생도 그런 이중적인 기분으로 지금껏 살아온 걸까요? 엄마 말이 틀렸다는 걸 입증해 보이려는 노력으로….

그런데 정말 엄마는 왜 그러셨을까요? 남의 집 자식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부정적인 말을 안 하시던 분인데, 왜 당신의 딸과 아들은 평가절하하셨을까요? 제가 엄마가 돼보니, 그 심리를 알 것도 같습니다. 관심과 책임감이 너무 커서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자식의 부족한 부분이 너무 안타까워서 냉정함을 잃은 것이죠.

원망하며 닮아가는 것인지, 저도 엄마와 똑같은 행동을 부지불식간에 하고 있네요. 둘째를 '꼴통'이라 부르지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공부는 잘 못해도 엉뚱 발랄한 매력이 넘치니까, 형보다 더 잘 될 놈이라 믿습니다. 그러고 보니 반성해야겠습니다. 내 자식이라고 내 맘대로 입을 놀리다니. 그래놓고 그 어린애들이 내 속뜻을 이해해 줄 거라 믿다니.

언젠가 큰아들에게 작은아들 걱정을 늘어놓은 적이 있습니다. 저 녀석은 공부도 잘 못하고, 철도 없으니 어쩌면 좋으냐고요. 그때 우리 큰 녀석의 나직한 대답이 새삼 가슴을 찌르네요.

"걱정 마세요 엄마. 쟤한테는 평생 사생 팬인 엄마가 있잖아요."

그때는 그 말을 웃으며 들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가슴이 짠합니다. 엄마는 동생의 사생 팬이라고 생각하는 과묵한 맏이의 속이 어땠을지….

앞으로는 두 아들을 손님처럼 어려워할 줄도 알아야겠습니다. 내가 낳았다고 내 멋대로 미래를 상상하거나 입방정 떨지 말아야겠습니다. 아울러, 늙으신 엄마도 이번 기회에 완전히 이해해 드리려 합니다. 그때는 지금처럼 평생 배우고 대화하던 시대가 아니었고, 엄마도 엄마 노릇이 처음이라 시행착오를 겪으신 거라고. 부디 동생도 그렇게 이해해주길 바랍니다.

동생아. 누가 뭐래도 엄마가 예뻐하신 건 막둥이인 너였어. 쳐다만 봐도 꿀 떨어지는 아들이었지. 그리고 물론 나는 남들 앞에 내놓기 뿌듯한 딸이었고. 엄마는 우리 둘 다 넘치게 사랑하셨어. 내가 엄마가 돼보니, 엄마의 말 안 되는 그 말이 이해가 된다. 둘 중 하나를 유독 더 사랑하면서, 다른 한 녀석도 그에 못지않게 늘 사랑할 수 있더라는 그 말이….

※실화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사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