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6·25와 매운맛

조선일보
  •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입력 2019.07.12 03:01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이문원 대중문화평론가
유튜브 전성시대의 히트 아이템 중 하나로 한식(韓食)에 대한 외국인 반응을 보는 채널을 빼놓을 수 없다. 여기서 또 빠지지 않는 게 '매운 음식'에 대한 외국인들 반응이다. 뭔가 가학적인 느낌도 들지만, 매운 음식 잘 먹는 민족이란 것에 대한 묘한 자부심도 엿보인다.

그런데 한국인이 '이 정도'로 매운 음식을 먹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15년 한국식생활문화학회지에 실린 서모란, 정희선의 논문이 이 점을 다뤘다. 1937년부터 2014년까지 조리서 및 신문, 잡지 기사 등에 나타난 배추김치 조리법 변화를 제시한다. 배추 한 포기당 평균 고추 사용량은 1930년대 5.75g에서 서서히 늘어나다 2010년대 이르러선 71.26g까지 간다. 무려 12배가 뛴 셈이다. 물론 김치에 국한된 얘기는 아니다. 농림축산식품부 1인당 고추 연간 소비량 자료도 있다. 1970년 1.2kg에서 시작해 2010년대엔 3kg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왜 이토록 매워졌을까. 국립민속박물관 안정윤 학예연구원의 2009년 논문이 그 해석을 제시한다. 안 연구원은 매운맛이 대중적으로 확산된 시기를 1950년대로 보면서 "6·25전쟁, 빈곤과 기아의 스트레스가 매운맛을 찾게 했다"고 지적한다. 고추의 매운맛이 중독 증세와 엔도르핀 효과를 내기에 그렇다는 것이다.

[일사일언] 6·25와 매운맛
결국 '매운맛'이란 한국인들이 6·25 이후 겪어온 지난한 생존 투쟁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셈이다. 가난을 대물림하지 않으려 고군분투하다 매운맛으로 잠시나마 시름을 잊고 다시 생활 전선에 뛰어드는 모습이 눈에 선히 그려진다. 외국인들이 놀라고 괴로워하는 저 매운맛은 우리 피와 땀의 맛인 셈이다.

실제 요식업 관계자들 의견으로도 경제가 안 좋을 때 매운맛을 많이 찾는다는 건 정설에 가깝다. 지금은 어떨까. 청양고추로도 부족해 캡사이신을 쓰고, 극한의 매운맛 떡볶이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현재 국민이 받고 있는 스트레스에 대한 매우 '솔직한' 지표가 나온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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