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대기업 신용 강등 경고, 주력 산업 위기 서막일 수 있다

조선일보
입력 2019.07.12 03:20

글로벌 신용평가사 S&P가 '높아지는 신용 위험에 직면한 한국 기업들'이란 보고서를 내고 한국 대기업 신용도가 앞으로 당분간 부정적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특히 "수출 의존형인 반도체와 스마트폰, 자동차, 정유, 화학산업은 향후 1~2년간 어려운 영업 환경에 직면할 것"이라고 밝혔다. 머지않아 한국의 대표 기업들 신용등급을 줄줄이 떨어뜨리겠다는 얘기다. S&P는 이미 현대차의 등급을 BBB+로 한 단계 낮추는 등 작년 말부터 일부 대기업의 신용등급·전망을 하향 조정하고 있다. 신용등급이 낮아지면 자금 조달이 어려워지거나 차입 비용이 비싸지는 악영향이 생긴다. 주력 산업의 부진이 기업 신용 저하로 가시화되고 있다.

S&P는 신용등급 악화의 가장 큰 이유로 내수 침체와 수출 부진 등 안팎으로 '험난한 영업 환경'을 들었다. 전체 수출의 20%를 차지하는 반도체 수출이 이달 들어서도 25% 감소했고 선박과 석유 제품 수출도 각각 17%, 3% 줄었다. 올 1분기 매출액 상위 100대 기업의 영업이익은 1년 전보다 40% 추락했다. 이 중 30개 기업은 외부 차입을 하지 않으면 빚을 갚기 어려울 정도로 현금 사정이 악화됐다는 분석도 나왔다. 중소기업에 비해 상대적으로 호황을 누렸던 대기업 실적마저 하향세로 돌아서는 조짐이 뚜렷하다.

기업 실적과 신용 악화는 주력 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반영한다. 조선과 해운이 위기에 빠졌고 자동차 산업은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스마트폰은 세계 1위 자리가 위태롭고 디스플레이가 적자로 돌아서는 등 ICT 산업도 쪼그라들고 있다. 미·중 무역 마찰에 따른 역풍도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경쟁력이 약해졌기 때문이다. 글로벌 시장의 혁신을 주도하던 한국 제조업이었다. 세계가 부러워하던 왕성한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면서 설비투자는 두 자릿수 마이너스를 이어가고 있다.

정부 정책은 이런 위기를 극복하는 방향이 아니라 악화시키는 방향이다. S&P는 '규제 리스크'를 언급하면서 탈원전에 따른 한전의 적자 전환을 예로 들었다. 무리한 주 52시간 근무제는 기업 개발 부서와 연구소를 불 꺼진 사무실로 만들고 있다. 경쟁국들이 법인세를 내리며 투자 활성화에 총력전인데 한국 정부는 거꾸로 법인세 최고세율을 높이고 각종 비용을 더 늘리는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경직적인 노동 제도를 더 경직되게 만들고 있다. 과도한 환경 규제로 제철소 고로(高爐)의 불이 꺼질 지경이다. 산업 안전을 이유로 툭하면 공장을 세울 수 있게 하는 화학물질 규제 법안도 강행했다. S&P의 경고는 최근 일본의 무역 보복은 고려하지 않은 것이다. 일본 조치의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하면 우리 대기업 신용등급은 더 가파르게 하락할 우려가 있다. 일본은 반도체 소재를 무기로 하고 있다. 이 소재를 우리가 개발하려면 화학물질 규제 완화와 주 52시간 근무제 유연화가 필요하다. 엊그제 대통령과의 청와대 간담회에서 기업인들이 이를 건의했지만 정부는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일본이 무역 보복을 발표한 후 일주일 만에 대통령이 처음 연 경제 관련 회의가 '공정경제 성과 보고회'였다. 국회 계류 중인 고용·노동 법안 890개 중 규제 강화 관련 법안이 493개로 규제 완화 법안의 7배에 달한다. 이러고도 주력 산업이 위기에 빠지지 않는다면 그게 기적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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