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판 살인의 추억' 택시기사 1심서 무죄…法 "검찰 증거만으론 혐의 입증 안 돼"

입력 2019.07.11 15:12 | 수정 2019.07.11 18:11

10년 전 제주에서 보육교사를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50대 택시기사가 1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린 이 사건은 또다시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됐다.

제주지법 제2형사부(재판장 정봉기)는 11일 살인 혐의로 구속 기소된 박모(50)씨에 대해 증거가 불충분하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주장이나 변명이 일부 모순되거나 석연치 않은 점이 있고, 통화내역을 삭제하는 등 피고인이 이 사건 범행을 저질렀다고 의심할 만한 정황이 있으나, 검사가 제출한 증거들만으로는 합리적인 의심을 배제할 정도로 혐의가 입증됐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앞서 검찰은 "일면식도 없는 27세 여성을 강간하는 데 실패하자 목을 졸라 살해한 뒤 차가운 배수로에 방치한 만큼 영원히 사회에서 격리해야 한다"며 무기징역을 구형(求刑)했다. 또한 200시간의 성폭력 치료 프로그램 이수와 10년간 신상정보공개도 요청했다.

’제주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박씨가 지난해 제주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
’제주보육교사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박씨가 지난해 제주 동부경찰서로 압송되고 있다. /뉴시스
박씨는 2009년 2월 1일 새벽 자신이 운전한 택시에 탄 보육교사 이모(당시 27세)씨를 성폭행하려다 저항하자, 목 졸라 살해한 혐의로 기소됐다. 이후 애월읍의 한 농업용 배수로에 시신을 유기한 혐의도 받았다.

사건 발생 당시 경찰은 박씨를 유력 용의자로 지목했으나 직접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풀어줬다. 박씨는 2010년 2월 제주를 떠나 여러 지역을 떠돌며 생활해왔다. 이 사건은 수사당국에서 증거를 찾지 못해 장기 미제로 남아있었다. 이른바 '제주판 살인의 추억'이라 불린 이유다.

2016년 2월 경찰은 장기미제 전담팀을 꾸리고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재개했다. 경찰이 사건 당시 사체 상태와 기후 조건까지 맞춰 동물 실험을 진행한 결과 이씨가 실종 당일 기준 24시간 이내 사망한 것으로 조사됐다.

또 범행 동선에서 박씨의 차량이 찍힌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정했다. CCTV 속 노란색 캡이 달린 NF쏘나타 택시 동선을 재분석한 결과 조건에 맞는 택시는 제주 지역에서 18대 뿐이었다. 다른 경우의 수까지 모두 충족하는 택시는 박씨의 차량뿐이라는 것이 수사 당국의 판단이었다.

이밖에도 당시 박씨와 피해자의 옷, 택시에서 발견된 섬유 조각에 대한 미세증거를 분석했다. 피해자와 박씨의 옷 5곳에서 서로의 섬유 조각이 발견됐다. 이를 토대로 수사당국은 두 사람간 격렬한 신체접촉이 있었다고 추정했다.

이런 증거를 토대로 경찰은 지난해 5월 박씨를 체포했고, 검찰은 지난 1월 박씨를 구속 기소했다. 다만 피해자 이씨의 시신에 범인의 DNA가 없었고, 자백이나 목격자 진술 등 직접 증거가 없어 범행 입증을 놓고 논란이 계속됐다.

재판부는 이날 검찰이 제시한 미세섬유 증거, CCTV 영상 등을 모두 증거로 인정하지 않았다.

재판부는 "CCTV에 녹화된 택시가 피고인의 차량인지도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범인이 피해자를 살해한 이후 무려 6시간이나 지난 후에 제주시 아라동으로 이동해 가방을 유기했다고 보기도 어렵다"고 했다.

특히 위법한 절차로 입수된 증거물도 문제가 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살던 모텔을 압수수색할 당시 경찰은 긴급을 요하는 사정이 없었음에도 영장을 발부받지 않은 채 모텔방을 수색했다"며 "모텔업주로부터 청바지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런 임의제출에 따른 압수는 형사소송법 규정을 위반한 것이어서 증거 능력이 인정될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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