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0일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 등 총자산 10조원 이상 대기업 30개사 총수 및 CEO를 청와대로 불러 2시간 동안 일본의 경제 보복 문제를 논의했다. 간담회에선 강제징용 판결 등 한·일 간 외교 갈등에서 발생한 이번 사태에 대한 외교적 해법보다는 기술 자립, 수입선 다변화 등 중장기 대책만 주로 거론됐다.
청와대는 "기업인들은 '부처와 긴밀히 협력하겠다' '단기적으로 모든 조치를 다하겠다' '부품산업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발표했다. 이번 사태의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정부와 기업이 '총력 대응'에 한마음 한뜻을 모은 자리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부가 본질적 문제인 외교적 해결책은 내놓지 못하면서 기업들만 불러 '기술 자립과 수입선 다변화'라는 어려운 과제를 떠안긴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참석 기업인들은 "반도체 라인이 멈추는 일은 없어야 한다" "기업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 정부도 그만큼 최선을 다해달라"며 절박함을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모두 발언에서 "정부는 외교적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일본 정부도 화답해주길 바란다.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하고 근거 없이 대북 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이어 "양국 경제는 물론 세계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라며 '국제 여론전'을 예고했다. 문 대통령이 말한 '외교적 해결'은 대일(對日) 외교 교섭보다는 산업부 차원의 실무협의, 그리고 세계무역기구(WTO) 등을 통한 국제 공조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사태가 장기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전례 없는 비상 상황에 민관(民官) 비상 대응 체제를 갖출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수입처 다변화와 추경 편성, 핵심 부품의 국산화, 대·중소기업의 협력 등을 당부했다.
이 자리에서 기업 총수들은 "사태가 장기화하기 전에 해결돼야 한다" "기술 개발을 막는 규제를 풀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간담회 끝에 "정부가 적극 뒷받침할 테니 공동기술 개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부품 기술 협력을 통해 한국 경제를 업그레이드하는 계기로 삼아 달라"고 했다. 그러나 한 참석 기업인은 "정부가 최선을 다한다지만 실제는 아무 해결도 못 하면서 기업인들을 병풍처럼 세운 채 '자력갱생'하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간담회에는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 등은 해외 출장을 이유로 불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