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사일언] 왜 집에 안 오세요?

조선일보
  • 김은주 외화번역가
입력 2019.07.11 03:01

김은주 외화번역가
김은주 외화번역가
우리 아랫집은 10여년째 비어 있다. 세를 줄 생각도, 팔 생각도 않고 그냥 비워두고 있다. 우리가 이사 올 무렵엔 가끔 얼굴을 비쳤던 그 집 여자는 얼마 뒤부터 아예 나타나질 않았다. 빌라 관리인 말로는 관리비를 꼬박꼬박 입금하고 있다고 했다. 노모(老母)가 그 집에서 돌아가신 뒤부터 비워두는 거라는 소문도 들렸다. 관리인은 수시로 그 집을 환기시키고 앞마당의 꽃나무도 돌봤다. 하지만 아랫집이 장시간 비어 있다는 건 은근히 신경 쓰이는 일이다.

어느 날 관리인이 그 집 주방 천장에 물이 샌다고 해서 내려가 봤다. 집안엔 온갖 살림살이가 그대로 있었다. 주방 천장을 보니 개수대 쪽이 좀 꺼져 있었다. 그 집 여자 연락처를 달라고 하니 관리인은 공사를 먼저 하는 게 어떠냐고 했다. 그러나 문제의 원인도 모르고, 게다가 집주인 허락 없이 그럴 순 없는 일. 그래서 흐지부지됐다.

몇 년 뒤, 나이 든 관리인은 퇴직했고 그의 소개로 50대 여자 관리인이 새로 들어왔다. 며칠 전 천장 상태도 볼 겸 새 관리인을 따라 그 집에 다시 들어가 봤다. 처음 들여다본 안방 화장대엔 화장품이 그득했고 화장용 브러시는 삭아서 절반쯤 가루가 돼 있었다. 새 관리인은 지하 방엔 무서워서 못 내려가 봤다고 했다. 난 '신앙이 있어서 무섭지 않다'고 큰소리치며 지하로 연결된 계단에 발을 내디뎠다. 순간 어둑한 계단 벽에 걸린 대형 액자 속 얼굴이 희부옇게 눈에 들어왔다. 마치 공중에 사람이 떠 있는 것처럼.

[일사일언] 왜 집에 안 오세요?
지하 방엔 거미줄밖에 없었다. 관리인에게 여자의 연락처를 달라고 하니 순순히 전화번호를 넘겨줬다. 여자의 메신저 프로필 사진은 내가 10여 년 전 마주친 그 얼굴이 분명했다. 지금 집안에 걸려 있는 액자 속 얼굴. 다만 한참 더 젊은 시절의 사진이다. 난 아직 그녀에게 연락을 못 하고 있다. 왠지 전화를 받는 사람이 그녀가 아닐까 봐. 혹시 그녀가 받는다면 묻고 싶다. '의논할 게 많은데 왜 집에 안 오세요? 대체 무슨 사연이 있는 건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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