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일의 입] ‘문재인’은 ‘김대중’을 모르는가

입력 2019.07.10 18:30


다음달 18일이면 DJ가 세상 뜬 지 10년이다. 여당 사람들은 DJ 10주기 행사에 김정은 동생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을 초청하려고 몸이 달아 있는 것 같다. 초청장을 들고 평양으로 그녀를 ‘모시러’ 갈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여당 사람들은 요즘처럼 일본의 경제 보복으로 나라가 뒤숭숭할 때 김대중 전 대통령의 대(對) 일본 정략의 일화를 알고 있기나 한지 궁금하다.

지금부터 21년 전 김대중 대통령이 취임했던 그해, 1998년은 한일 관계가 몹시 불안했었다. 일본 정가에서는 잊을 만하면 온갖 망언(妄言)을 풀어놓아 한국인의 정서를 건드렸고, 한국에서는 김영삼 전 대통령이 "일본의 버르장머리를 고쳐 놓겠다"라고 했던 그 분위기가 그대로 이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등장했으니 한일 관계가 더욱 악화될 것으로 걱정하고 있었다. 역사 인식에 있어서 DJ는 YS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비판적이었고, 개인적인 관련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해 10월, 그러니까 김대중은 대통령에 취임한 지 8개월 만인 1998년 10월7일부터 10일까지 일본을 국빈 방문한다. 그때 김대중은 목포상고 시절 은사인 무쿠모토 이사보로 선생을 영빈관으로 모셔서 반가운 해후를 한다. 실로 59년 만에 다시 만나는 스승이었다. 그 자리에서 김대중은 일본인 선생의 가르침에 대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그런데 나이 여든 노인이 되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무쿠모토 선생에게 김대중은 한국말이 아니라 일본어로 인사를 한다. "센세이 와타시데쓰. 아노 다이주데쓰요." 옮기자면 ‘선생님 접니다. 대중입니다.’ 이런 뜻이다.

다른 대통령이라면 한사코 감추고 싶어 했을 일제 시대의 개인사를 과감하게 드러낸 김대중이다. 특히 ‘도요타 다이주(豊田大中)’로 창씨개명한 자신의 일본식 이름까지 그대로 공개했다.

‘김대중은 자신을 일본식 이름으로 기억하고 있을 80객 은사에게 일본어로 인사하는 속 깊은 인간적 면모를 보여줌으로써 우리 한국인은 고마운 일을 고맙게 여길 줄 아는 예의 바른 사람이라는 이미지를 일본인에게 전달했다.’ ‘아니 일본 사람들이 지닌 뿌리 깊은 혐한의 감정과 불신의 마음을 조금씩 누그러뜨리고 우리 편으로 돌려세우는 작업을 그렇게 자연스럽게 시작했던 것이다.’ ‘단순한 개인이 아니라 한국의 대통령인 그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우리 한국인의 다양한 감정을 잘 알고 있는 그가, 자신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정치적 반대파들에 의해 엄청난 친일적 행태로 비난받고 증폭될 수 있다는 것 정도는 충분히 예상하고 있는 그가 참으로 자연스럽게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우리 한국에 대한 신뢰의 감정을 구축해 나가고 있었던 것이다.’ (홍정선 인하대 명예교수 인용. 부분 수정)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김대중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있고, 그를 비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일(對日) 정략(政略)에 있어서만큼은 그의 역사적 안목과 미래를 향한 비전을 눈여겨봐야 한다. 바로 그런 김대중의 일본 방문을 계기로 우리는 아키히토 일본 천황이 처음으로 공식 석상에서 과거의 식민지 지배에 대해 ‘고통’과 ‘사과’라는 표현을 해가며 사과하는 모습을 지켜볼 수 있었다. 바로 그런 김대중이 있었기에 오부치 게이조 총리가 공동선언문에 ‘통절한 반성’, ‘마음으로부터 사죄’라는 표현을 명기하며 읽어 내려갔던 것이다.

‘김대중은 수난과 고통을 당한 피해자의 입장에서 소리 높여 가해자의 사과 책임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미래를 향해 편견 없이 이해와 포용의 길을 걸어가는 파격적 결단과 행보를 보여주었다. 주목 받는 정치적 이벤트를 통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사소한 행동을 통해 우리 한국 사람은 언제까지나 피해자의 원한에 사로잡혀 있는 그럼 사람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일본 사람들의 가슴에 심어갔던 것이다.’ (홍정선 교수 재인용. 부분 수정)

그때 김대중은 청와대 출입기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다. "나는 오부치 총리와 약속을 했다. 앞으로 두 나라는 정치인들의 망언에 대해 국가적 쟁점으로 비화시키지 말고, 두 지도자는 오로지 양국의 미래만 보고 나아가자고 했다."

지금 문재인 정부는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해 보복 철회를 요구하고, 국제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국제여론전을 펼치려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모든 책임은 일본에 있고, 이제 대책은 기업의 중심이 돼야 한다는 기조다. 한마디로 ‘초강경 모드’로 나가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21일 일본 참의원 선거가 끝나면 풀릴 것이란 생각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신각수 전 일본대사는 그건 ‘오산(誤算)’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미국의 중재를 바라고 있는 것 같은데 미국은 전략적 침묵을 유지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의병을 일으키자" 같은 강경 목소리만 터져 나오고 있다. 답답하다. 문 대통령은 21년 전 김대중이 일본에서 했던 생각과 언행에서 배우는 바가 전혀 없는지, 이제는 완전히 잊었는지 묻고 싶다.


*조선일보 김광일 논설위원이 단독으로 진행하는 유튜브 ‘김광일의 입’, 상단 화면을 눌러 감상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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