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에게 당하면 열 배로 갚는다… 이게 직장인의 판타지

입력 2019.07.10 04:10

이케이도 준… 日서 소설과 드라마로 히트한 '한자와 나오키'의 원작자

피 없이도 통쾌한 복수극이다. 조직의 비리와 상사의 갑질에 맞서 당한 만큼 갚아주는 소설 '한자와 나오키'(인플루엔셜)가 최근 국내에 번역됐다. 동명 드라마는 마지막 회 순간 시청률 50%를 넘으며 일본 드라마 역대 시청률 3위를 기록했다. 번역을 기다리는 한국 팬이 많았던 원작은 한·일 관계 악화 속에서도 꿋꿋이 소설 부문 베스트셀러를 유지하고 있다.

무리한 대출 승인으로 5억엔을 날릴 위기에 처하자 은행 지점장은 부하 직원인 '한자와 나오키(半沢直樹)'에게 책임을 뒤집어씌운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은행원 한자와는 대출금을 회수하고 지점장에게 복수하기 위해 탐정처럼 자금 흐름을 추적한다.

지난달 28일 도쿄에서 만난 작가 이케이도 준(56)은 한자와 나오키의 인기 비결로 "이해하기 쉬운 간단한 구조"를 들었다. 독자는 한자와가 부당함에 맞서 외치는 한마디 한마디에 쾌감을 느낀다. "당하면 갚아주는 게 내 방식이야. 열 배로 갚아줄 거야" 같은 대사가 대표적.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고 감동해서 우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결국 독자는 희로애락, 마음의 기본적 움직임에 감동하죠. 등장인물의 심리에 집중해 그리는 것이 비결입니다."

도쿄 출판사에서 만난 이케이도 준은 “이 소설을 쓸 때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면서 “책을 덮고 난 독자가 ‘아, 재밌었다’고 말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도쿄 출판사에서 만난 이케이도 준은 “이 소설을 쓸 때 끝까지 읽게 만드는 것이 첫 번째 목표였다”면서 “책을 덮고 난 독자가 ‘아, 재밌었다’고 말하면 충분하다”고 했다. /백수진 기자

이케이도는 게이오대를 졸업하고 은행원으로 일했다. 한자와처럼 대형 은행에서 수백 회사의 융자를 담당했다고 한다. 은행을 그만두고 1998년 에도가와 란포상을 받으며 소설가로 데뷔했다. 그는 "비즈니스 현장 분위기를 잘 알기 때문에 어떤 사건이 터졌을 때, 인물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고 했다. "한국에 불량 채권을 회수하러 간 적도 있었어요. 결국 회수는 못 하고 주꾸미랑 삼계탕만 맛있게 먹고 돌아왔지만요."

소설 배경은 일본의 거품 경제가 꺼지고 기업이 곳곳에서 도산하던 시기. 당시 은행원이었던 그는 "불량 채권이 늘어나고 구조조정이 시작된 고난 시대"라고 했다. "채권 회수만 전담하는 직원까지 생기던 시절이었죠. 한자와는 그런 어려움 속에서 활약하기 때문에 많은 이의 응원을 받은 것 같아요."

일본 금융 업계를 실감 나게 묘사해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드라마가 인기를 얻자 일본은행과 금융청에 항의 전화가 빗발친 것. "금융청 감사관 '구로사키' 같은 사람은 잘라야 한다고 화를 냈대요. 나중엔 악역이지만 새침한 말투를 쓰도록 바꿨어요. '여러분, 이건 실제가 아닙니다'라고 확실하게 말해주기 위해서요."

권위적 조직에서 바른말만 골라 하는 한자와는 직장인의 판타지에 가깝다. 사죄를 강요하는 상사에겐 이렇게 맞받아친다. "제 책임이 아닌 것까지 사죄하는 건 오히려 부끄럽고 무책임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 감사를 나와서 한쪽 편만 드는 부장에겐 이렇게 묻는다. "처음부터 이야기를 들을 생각이 없다면, 비싼 교통비를 내고 현장 감사를 올 의미가 없지 않습니까?"

이케이도는 독자들에게 "한자와를 따라 하지 말라"고 당부한다. "저도 현실에선 예의 바른 은행원이었습니다. 보통 사람이라면 말하고 싶은 대로 다 말할 순 없죠." 그는 "한자와가 도중에 좌절하면 소설이 완성될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했으면 했다"면서 "그때그때 자신의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까 고민하는 것이 직장인의 '사명감'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케이도 준은 '한자와 나오키'를 시작으로 '변두리 로켓' '하늘을 나는 타이어' 등 출간하는 작품마다 드라마화됐다. 누적 판매 부수가 2100만부에 이른다. 개성 있는 캐릭터와 살아있는 대사가 특징. '하늘을 나는 타이어'를 쓸 땐 잡지의 얼굴 사진들을 오려 놓고 '생김새가 이런 사람은 이렇게 말할 것'이라 상상하며 대사를 썼다고 한다. 그는 "등장인물은 작가 의도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가 아니라 각자 인생을 가진 진짜 사람이어야 한다"면서 "소설을 쓸 때 인물이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지를 가장 중요시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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