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의 계산된 침묵?

조선일보
입력 2019.07.10 03:07

[일본의 경제보복] 일본 경제보복으로 한국기업 부진 땐 반도체 반사이익
反화웨이에 미적대는 韓보다 즉각 동참한 日 편드는 듯

일본의 경제 보복이 확산 조짐을 보이는 가운데 중재의 열쇠를 쥔 미국의 침묵이 길어지고 있다. 일본과의 사전 교감, 자국(自國) 반도체 산업의 반사 이익 등을 계산한 '전략적 침묵'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1위 경쟁력을 보유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급이 끊겨도, 미국 IT(정보기술) 업계에 미칠 충격은 생각만큼 크지 않을 것으로 본다. 100% 대체가 불가능한 제품은 최상위급에 한정돼 있기 때문이다. 수퍼컴퓨터나 데이터센터에 들어가는 고성능 반도체, 자율주행차·스마트폰용으로 개발된 반도체 정도다. 나머지는 자체 조달하거나 중국 기업으로부터 공급받을 수 있다.

한국 반도체 기업의 부진은 미국 기업에는 수혜가 될 수 있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전체 D램 시장의 70.4%, 낸드플래시 시장의 43.7%를 차지한다. D램은 두 업체의 뒤를 미국 마이크론이 바짝 쫓고 있다. 낸드플래시는 한국이 없으면 2위인 일본 도시바와 3·4위 미국 웨스턴디지털·마이크론으로 수요가 돌아간다. 반도체 전문가인 황철성 서울대 교수(재료공학부)는 "한국산(産) 반도체의 성능이 뛰어나지만 그게 없다고 미국 전자산업이 치명상을 입는 수준은 아니다"라면서 "미국 마이크론에 수혜가 돌아가는 상황에서 미국 정부가 과연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설 것인지 미지수"라고 했다.

한국이 세계 시장 9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OLED (유기발광다이오드) 역시 마찬가지다. TV용 OLED는 LG디스플레이가 100%를 공급하지만, 한국(LG전자)과 일본(소니·파나소닉) 업체들이 주 고객사다. OLED TV를 만드는 미국 기업은 아직 없다. 스마트폰용 OLED도 삼성디스플레이가 시장의 87%를 장악했지만 중국 BOE가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 현재 삼성 OLED만 쓰는 애플도 대체재는 있다는 뜻이다.

재계에서도 미국의 개입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목소리가 많다. 한 대기업 임원은 "미·중 무역 전쟁에서 미국이 '반(反)화웨이'를 외쳤을 때 일본은 정부 차원에서 즉각 편을 들었지만, 한국은 '기업이 판단할 문제'라며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면서 "미국이 일본과 한국 한쪽 편을 든다면 누구 편을 들 것인지는 우리 스스로가 잘 알지 않느냐"고 했다. 다른 기업 임원은 "실리를 중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스타일을 봤을 때 철저히 계산기를 두드려보고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최원목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이 과감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은 미국 워싱턴과 사전 교감 혹은 최소한 묵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번 사태는 단순한 무역 보복이 아닌 미·일 동맹이 보내는 공동의 경고라고 해석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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