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남북] 靑 홈페이지서 사라진 '김정숙의 말과 글'

입력 2019.07.09 03:15

대통령 코너와 同級이었던 김 여사 코너, 최근 이름 바꿔
각종 논란에 '로키' 전략으로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

황대진 정치부 차장
황대진 정치부 차장
'김정숙의 말과 글'이 사라졌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대통령의 말과 글'과 함께 있던 코너였다. 알고 보니 내용은 그대로인데 문패만 '김정숙 여사 소식'으로 바뀌었다. 청와대에 물어봤다. 청와대 관계자는 "최근 홈페이지를 개편하면서 다른 메뉴 이름도 함께 바꿨다"고 했다. 바꾼 이유에 대해선 "국민이 더 보기 쉽게, 더 이해하기 쉽게"라고 했다. 하긴 김 여사 동정을 알리는 코너 이름을 '김정숙의 말과 글'이라고 하는 것보다 '김정숙 여사 소식'이라고 하는 게 더 이해하기 쉽다. 애초에 그렇게 했으면 좋았을 것을 '김정숙의 말과 글'이라고 이름 붙인 게 '오버'였다. 그것도 홈페이지 첫 번째 메뉴에 '대통령의 말과 글'과 '동급'으로 올려놓은 것에 적잖은 사람이 의아해했다.

청와대 홈페이지를 살펴보니 그동안 "'김정숙의 말과 글' 코너를 삭제해달라"는 국민 청원이 꽤 있었다. 청원자들은 "영부인이기 때문에 청와대 홈페이지에 개인의 이름을 건 게시판이 존재하는 것에 반대한다" "영부인께서 국모(國母)처럼 활동할지언정 국모로 떠받드는 것에 반대한다" 등의 의견을 올렸다. 어떤 이는 "국민이 김정숙의 말과 글을 왜 들어야 하나. 여기가 북한인가"라고도 했다.

일각에선 김 여사가 청와대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이런 분위기가 홈페이지에도 반영됐을 거라고 한다. 그러나 김 여사가 홈페이지 이름을 직접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참모들이 '과잉 충성'했을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관계자는 "최근 청와대 참모들도 김 여사의 이미지를 놓고 고민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지금보다 로키(low-key)로 가는 방향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사실 김 여사만큼 세간의 주목을 받은 영부인도 드물다. 김 여사는 지난달 20일 삼성전자·SK·롯데 등 대기업 관계자와 오찬을 했다. 원래 공개 행사였지만 '로키' 전략에 따라 비공개로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의도와는 정반대로 "영부인이 왜 기업인을 몰래 만나느냐"는 이야기를 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방한 시에도 김 여사가 착용한 '파란 나비' 브로치가 논란이 됐다. 성주의 사드 반대 운동을 상징하는 파란 나비와는 다른 것이었지만, 일부에선 김 여사가 트럼프 대통령 앞에서 사드 반대 메시지를 내보내려 했다고 주장했다. 아무런 근거 없이 김 여사를 비난하는 이들은 분명히 잘못됐다. 하지만 김 여사가 이런 오해를 받도록 만든 청와대 참모들이 더 문제다. 이들은 김 여사를 필요 이상으로 국민 앞에 떠밀었다.

청와대는 '김정숙의 말과 글' 코너를 통해 '유쾌한 정숙씨' '친절한 정숙씨'라며 김 여사를 홍보했다. '김정숙 여사의 패션 팁'을 소개하는가 하면, 대통령 취임 1주년에 '국민과 함께한 김정숙 여사의 1년' 자료를 별도로 올렸다. 자유한국당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이 문 대통령 취임 이후 1년간 청와대 공식 브리핑 등을 전수조사한 결과 '인물' 기준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사람은 당연히 문 대통령(2505건)이었고, 다음이 트럼프 대통령(384건), 그다음이 김 여사(337건)였다. 4위는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228건)이다. 해외 순방 등 부부 동반 일정이 많아 김 여사 이름이 많이 호출된 측면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해도 이렇게 많이 등장시킬 필요가 있을까 싶다.

'김정숙의 말과 글' 삭제 청원 중 이런 구절이 있다. '그저 나라가 평안하여 대통령이 누구인지, 그의 가족이 누구인지 모르더라도 이상한 게 아닌 세상에서 살고 싶습니다.' 같은 생각이다. 늦었지만 '김정숙의 말과 글'이 사라진 건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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