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한 IT 회사 본부장인 A(48)씨는 지난 2월 1000만엔(약 1억원)을 들여 소형 인쇄 대행 업체를 인수했다. 31년 된 회사로, 주로 근처 치과대학에 수업 자료를 인쇄해 납품하던 업체다. 연 매출은 2000만엔대. 이 업체를 매각한 대표는 60대 후반이 되면서 체력이 달렸고, 후계자도 없었다. 폐업의 갈림길에서 업체 대표는 회사를 M&A(인수합병) 중개 사이트에 매물로 내놨다. A씨는 2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업체를 인수했다. 자신의 경력을 살려 온라인 인쇄 주문 시스템을 개발한다면 회사를 더 키울 수 있다고 봤다. A씨는 내년 3월 은퇴한 뒤 이 회사를 꾸려 나갈 계획이다.
아사히신문이 "이제는 개인이 기업을 사는 시대"라며 "과거 법인 간 거래가 당연하다고 여겨졌던 기업 M&A 시장에 샐러리맨들이 뛰어드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고 최근 보도했다. 샐러리맨이 M&A에 나서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일본에서도 종신 고용 문화가 희미해지면서 은퇴 후 수입원을 마련할 필요성이 높아졌다. 또 힘들게 창업을 하는 것보다는 이미 시장에서 자리 잡은 기존 업체를 M&A하는 것이 더 안전한 선택이라는 판단도 작용한다.
고령으로 현업에서 물러나야 하는 중소기업 사장들도 가업을 잇겠다는 '후계자'가 없다보니 매각에 나서고 있다. 일본정책금융공고종합연구소의 2015년 설문조사에 따르면, 60 세 이상 개인 사업자 약 70 %가 "내 대(代)에 사업을 그만둘 생각이다"라고 답변했다. 그 이유로 "후계자가 없어서"라고 답한 비율은 28.5%에 달한다. 중소기업 승계는 절반 이상이 가족이나 친족 간에 진행되는데, 핵가족화돼 자녀 수가 적을뿐더러 자식들이 가업을 잇겠다는 의식도 약해진 탓이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2025년이면 경영자가 70세를 넘는 중소기업이 전국 245만개로 전체 중소기업의 3분의 2에 달하고, 이 중 절반이 넘는 127만개사(社)가 후계자를 찾지 못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들이 모두 폐업할 경우 일자리 650만개가 날아가고, 국내총생산(GDP)은 22조엔가량 줄어들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일본 언론들이 '중소기업의 대(大)폐업 시대'가 도래했다고 우려할 정도다.
그렇다보니 "남에게라도 회사를 넘기겠다"며 'M&A 시장'에 회사를 내놓는 중소기업 대표들이 늘고 있다. M&A 중개 업체들도 개인 M&A 고객을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예전엔 10억엔 이상 규모 계약만 취급하며 높은 수수료를 챙겼지만, 최근 몇 년 사이에 수천만엔대 M&A 계약을 중개하는 인터넷 사이트들이 속속 등장했다. 선발 주자인 트랜비(Tranbi)의 경우 지난 1년 동안 기업 매도나 매수를 원하는 회원을 5000명 이상 모았다.
지난해 2월 출간된 '샐러리맨은 300만엔으로 회사를 사십시오'라는 책이 '인생 100세 시대의 개인 M&A 입문서'라는 부제를 달고 베스트셀러에 오르면서, 개인 M&A 시장은 더욱 주목받고 있다. 개인을 대상으로 한 'M&A 특별 강좌'도 잇따라 개최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