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빨래방에서 위안 찾던 캥거루족 출신… 손님 많아도 가혹한 임차료로 거의 다 나가"

조선일보
  • 홍콩=김은주 탐험대원
  • 취재 동행=김수경 기자
    입력 2019.07.08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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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빨래방 운영하는 36세 카톨 로

    홍콩의 공유 빨래방을 상징하는 가게 중 하나가 성완(上環)역 근처 '커피 앤드 런드리'다. 만들어진 지 1년밖에 안 됐는데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에게 '홍콩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통한다. 전체 면적의 절반을 뚝 잘라 카페를 운영한다. 지난달 27일 방문했을 때도 커피를 내리는 고소한 냄새가 손님들을 맞이했다. 빨래방은 단지 세탁을 위한 공간이 아닌, 젊은이들이 생각을 나누는 '분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이곳을 만든 카톨 로(36)는 "좁고 비싼 홍콩의 부동산 문제가 공유 빨래방이라는 새 산업을 탄생시켰다"고 했다. 빨래조차 할 수 없는 작은 주거 공간에 지친 사람들이 빨래방을 찾는다는 얘기였다.

    홍콩의 공유 빨래방 ‘커피 앤드 런드리’ 창업자 카톨 로(오른쪽)와 김은주 탐험대원.
    홍콩의 공유 빨래방 ‘커피 앤드 런드리’ 창업자 카톨 로(오른쪽)와 김은주 탐험대원. /김수경 기자

    디자이너로 일하던 그 역시 '작은 공간'에 묶인 자였다. "지난해까지 부모님과 누나네 네 식구, 그리고 나까지 함께 7명이 방 3개짜리 집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집이 좁으니 가족 중 누구와는 항상 마주 보는 상태였죠. 사생활은 전혀 없었습니다. 이런 답답함에 숨이 막힐 때마다 빨랫감을 주섬주섬 챙겨 빨래방으로 향했죠." 그는 얼마전 작은 아파트로 옮겼다. '미친 집값'으로 악명 높은 홍콩에서 카톨처럼 여러 가정이 함께 사는 건 흔한 일이다. 비(非)자발적 대가족의 확산이다.

    혼자 사는 홍콩의 청년들은 월급의 반 이상을 월세로 지출해야 한다. 그는 "독립을 하면 '월급을 모은다'는 개념이 없어진다. 빚 안 지면 다행"이라고 했다. 일을 해도 빚만 늘어나면 무슨 소용인가. 홍콩 청년들이 독립하지 못하고 캥거루족으로 살아가는 이유다. 다 큰 사람이 부모와 함께 사는 일이 쉽지만은 않다. 얼굴 붉힐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

    카톨은 이런 걸 경험 삼아 빨래방을 창업했다. 빨랫감을 들고 집에서 나와 세탁이 끝날 때까지의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가족들과 부딪치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빨래를 돌리는 시간 동안만큼은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했다. 빨래방을 청년들이 좀 더 숨 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보기로 했다. 벽에는 좋아하는 왕자웨이(王家衛) 감독의 영화 포스터를 붙이고 손수 그린 삽화도 채워 넣었다.

    카톨의 빨래방은 이 일대에서 가장 많은 손님이 온다. 하지만 그가 손에 쥐는 돈이 거의 없다. 상가 임차료 역시 가혹하기 때문이다. 그는 "홍콩 청년들은 예측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고 했다. "내년에 재계약을 해야 하는데 건물주가 임차료를 높게 부르면 여기 남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가게도 언제든 사라질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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