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인들, 한국과 대화해봤자 변할 것 없다 생각… 反韓감정 심각"

입력 2019.07.06 03:00

[일본의 경제보복] [한일 외교 원로에게 듣는다] [2] 오구라 가즈오 前주한 일본대사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1) 전 주한 일본 대사는 4일 일본 정부가 발동한 대한(對韓) 경제 제재에 대해 "일본인들에게 가끔은 한국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이라고 말했다. 오구라 대사는 이날 자신이 대표로 있는'패럴림픽 연구회' 사무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대단히 나빠져 있으니 한국에 주의해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일 관계 악화를 막을 해법으로 "일본인은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분을 이해하고자 노력해야 하며, 한국인은 식민 지배에 대한 감정과 외교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오구라 대사는 주프랑스 대사, 주베트남 대사, 국제교류기금이사장, 도쿄2020올림픽유치위원회평의회 사무총장을 역임한 일본 외교계의 원로. 1997년 주한 일본 대사로 부임할 때 "한국과 일본이 손잡고 국제사회에 기여하는 새로운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후, '김대중-오부치 뉴파트너십 공동선언'을 설계한 지한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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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81) 전 주한 일본 대사는 4일 인터뷰에서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 경제 제재는 일본인들에게 가끔은 한국에 강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차원”이라며 “한국에 대한 일본인들의 감정이 대단히 나빠져 있으니 한국에 주의해달라는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도쿄=이하원 특파원

―아베 내각이 참의원 선거전이 시작하는 4일에 맞춰서 경제 제재를 발동했는데.

"일본 정부가 이렇게 하는 데는 첫째 국내적 의미가 있다.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일본 국민에게 (논란이 된 징용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의 자세를 보여준다는 차원이다."

―또 무슨 의미가 있나.

"한국에 대한 '워닝(경고)', 일종의 충고이기도 하다. 앞으로 일본 국민의 대한(對韓) 감정을 좋게 하려면 한국에서 무엇을 하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일종의 '어드바이스'이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여론이 어느 정도 악화돼 있기에 이런 조치가 나왔나.

"지난달 도쿄에서 한일 미래 대화가 열릴 때 일본의 주최 측인 '겐론(言論) NPO'에 이를 반대하는 이메일이 6500건이나 쇄도했다. 예년과는 달리 어떤 기업도 이 행사를 후원하지 않았다. '한국과 대화해도 달라지는 게 없으니 만나는 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일본인이 많아졌다."

―한일 관계가 이렇게까지 악화된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장기적 차원에서 살펴보는 게 중요한데, 한일 관계의 구조적 변화를 일본도 한국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양국 국민 상당수는 여전히 '일본은 선진국, 한국은 중진국 또는 떠오르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지금은 동등한 파트너 관계가 됐다. 이를 깨닫는다면 지금같이 감정이 나빠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단기적 이유는 무엇인가.

"역시 북한 문제다. 납치, 핵, 미사일 문제에 대한 국민 의식, 감정이 일한 간에 차이가 매우 크다. 다른 하나는 중국이다. 한국은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까이 있어서 급격히 부상한 중국에 대한 자세가 다르다. 최근에는 외교관, 비즈니스맨, 사회적 지도자들 사이의 신뢰 관계가 약해진 것도 문제다."

―한국 정부가 지난달 징용 문제와 관련이 있는 일본 기업과 한국 기업이 돈을 내서 해결하자고 제안한 '1+1' 구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그것은 역효과를 낳을 것이다. 그러면 청구권 협정은 어떻게 되는 것이냐는 이야기로도 발전해서 진흙탕 싸움이 될 것이다. 문제를 더 크게 만들 위험성이 있어서 논의하지 않는 편이 낫다."

―대사가 생각하는 해법은 무엇인가.

"일본인은 식민 지배에 대한 한국 국민의 기분을 더욱 이해해야 한다.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해서는 안 된다. 한국인은 식민 지배에 대한 감정과 외교 문제는 또 다른 문제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국은 징용 문제를 외교 문제로 바꾸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양국 관계가 더욱 꼬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배상 문제는 한국에서 책임지고 해결해야 하나?

"일본의 기본적 생각은 그렇다. 대법원 판결에 대해서는 한국 국내에서 어떻게든 해결해야 한다. 일본도 할 일이 있다. 한국이 그렇게 할 만한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징용 피해자와 관련된 일본 기업이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건가.

"일본 일반 기업이 후원하는 한일 고교생 교류 캠프가 열려왔다. 기업들이 징용 문제와 관계없이 미래 세대를 위해서 했던 것이다. 징용 문제와는 별도로 한일 미래 세대를 위해서 장학금을 만드는 방법도 좋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총리에게 제언한다면.

"잠시만이라도 서로 대립하는 것을 피해야 한다. 냉정하게 생각해서 '상대방이 이렇게 하니 나도 갚아주겠다'며 보복하지 말아야 한다. 미국과 중국의 정상처럼 대립을 반복하는 것은 피하는 게 좋다. 양 국 국민감정을 격화시킬 언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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