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겹살? 목살?…그곳에 가면 '돼지갈비 할머니'가 있다

조선일보
  • 정동현
입력 2019.07.06 03:00

[아무튼, 주말- 정동현의 pick] 돼지갈비편
서울 용문동 '용문갈비'

서울 용문동 '용문갈비'에선 매일 손수 손질한 갈빗살을 양념에 재어 낸다.
서울 용문동 '용문갈비'에선 매일 손수 손질한 갈빗살을 양념에 재어 낸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허리가 굽은 노인은 몇 번이고 음료수를 마시라고 권했다. 어머니는 음료수값 걱정에 한사코 거절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집에서는 따로 음료수 값을 받지 않았다. 우리 형제는 콜라·사이다 없이, 물을 마시며 돼지갈비 13인분을 먹었다. 부산식으로 푹 끓인 시락국(시래깃국의 경상도 사투리)에 절인 무와 신김치를 올려가며 달고 짭짤한 돼지갈비를 먹었다. 위장에 구멍이 뚫린 듯 끝이 없었다. 20여 년 전 추억이 서린 부산 초량동 '88돼지갈비'는 여전히 영업 중이었다. 그 조그만 집을 다시 찾아 그 노인 이야기를 꺼내니 서빙을 보던 중년 여자가 이렇게 말했다.

"손님마다 그 할매 이야기를 많이 하녜예. 참 좋으신 분이였나봅니더."

그는 "예전에 돌아가셨다"고 말을 이으며 돼지갈비를 부지런히 뒤집고 또 잘랐다. 이제 음료수 값을 받지만 단맛보다는 간장의 짠맛이 강한 예전 맛은 그대로였다. 돼지갈비를 먹노라니 자연히 밥 한 공기를 시키고 말았다. 부산항 부두 노동자를 대상으로 고기를 팔던 초량동 돼지갈비 골목에는 예전의 왁자지껄함은 없었다. 컨테이너 화물 시대가 열리며 인력이 줄어들고 그마저도 신항으로 물량이 대거 옮겨진 탓이다. 또한 외식 트렌드가 삼겹살, 목살과 같은 비양념육으로 돌아선 까닭도 있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돼지갈비는 싼값에 푸짐히 먹을 수 있는 외식 메뉴임에는 변함이 없다. 서울 마포 먹자골목에 있는 '조박집'은 돼지갈비집이 얼마큼 성공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극단적인 예다. 근처에 가면 고기 굽는 냄새가 진동하고 줄을 선 인파는 공항에서 아이돌 귀국을 기다리는 팬들처럼 줄어들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시작부터 나오는 동치미국수로 목을 축이고 연기를 뒤집어쓰며 고기를 먹노라면 마포가 '코리안 바비큐'의 '종주국'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고즈넉한 분위기를 원한다면 일본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고로상이 다녀간 용산 보광동 '종점숯불갈비'를 가보자. 어떻게 일본 방송국이 여기를 찾았나 싶은 서울 변두리, 낮은 건물에 아담한 자태로 자리한 곳이다. 이 집에는 편한 옷차림의 단골들이 낮은 방에 앉아 상을 받는다. 덩치가 좋은 주인장은 묵묵히 고기를 나르고 시간을 머금은 김치와 밑반찬은 예전에도 앞으로도 그대로일 것 같은 모습과 맛을 지녔다. 맛도 요란스럽지 않고 수더분한데 호들갑을 떨며 사진을 찍기보다 고기 한 점에 소주 한 잔, 고기 한 점에 밥 한 숟가락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 좋다. 잠실에서 시작해 이제 서울 전역에 있는 '봉피양'은 돼지갈비의 절대적인 맛뿐만 아니라 가격에 있어서도 최고를 달린다. 값 비싼 돼지갈비 원육을 쓰고 몇 십년 경력의 전문가들이 달라붙어 만들어낸 봉피양의 돼지갈비는 가격에 불만이 있을지언정 맛으로 트집 잡기는 어렵다.

갈비를 철망에 얹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직접 담근 김치와 동치미를 곁들이면 몇십 년 먹어온 익숙한 맛에 편한 웃음이 스며나온다.
갈비를 철망에 얹자마자 고소한 냄새가 온몸을 휘감는다. 직접 담근 김치와 동치미를 곁들이면 몇십 년 먹어온 익숙한 맛에 편한 웃음이 스며나온다. / 양수열 영상미디어 기자
만약 가장 마음이 가는 곳을 꼽으라고 한다면 용문동 '용문갈비'를 꼽겠다. 1974년 문을 연 이곳은 앞에만 가도 따라 할 수 없는 세월이 느껴진다. 문을 활짝 열고 손님을 맞는 이 집에 가면 몸이 날랜 종업원들이 하얀 물수건부터 준다. 차갑게 식어 청량한 감각이 먼저 다가온다. 그 느낌에 이미 몸은 긴장을 푼다. 큼지막한 무가 담긴 동치미는 고기가 나오기도 전에 벌컥벌컥 마시는 이도 많다. 단맛이 적고 은근한 군내가 풍기는 예전 맛이다. 김치 역시 알맞게 익어 이것으로도 족하다 싶다. 철사로 짠 불판에 두툼한 갈비를 올리고 틈날 때마다 뒤집는다. 작은 쇠판에 마늘도 따로 올려 굽는다. 다른 부위 하나 섞지 않은 돼지갈비가 익어간다. 고기를 먹고 김치를 얹고 동치미를 마신다. 상추와 깻잎도 넉넉히, 파절임도 취향껏,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 소리는 커져간다. 후식으로 나오는 냉면에는 신김치가 한 줌 올라가 있다. 그리고 가게 맨 안쪽에는 지긋한 눈매를 한 노인이 앉아 손님을 바라보고 주문을 넣는다. 그대로이길, 건강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곳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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