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청구권과 '사법 농단'

조선일보
입력 2019.07.05 03:16

김종필 전 총리는 회고록에서 '한·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정치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꼽으며 '민주주의는 피를 먹기 전에 먼저 빵을 먹고 자라는 것'이라고 했다. 민주주의를 누리기 위해서는 경제 건설이 먼저라는 신념 때문에 '이완용보다 더한 매국노'라는 비난을 감수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학생 시위와 야당의 격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1965년 한·일 기본 조약을 체결했다. 당시 이명박·손학규·김덕룡·이재오 등이 학생 신분으로 수교 반대 시위에 앞장서다 구속됐다.

▶한·일 기본 조약에 딸린 관련 협정 4개 중 하나가 청구권 협정이다. 우리 정부는 이를 통해 일본으로부터 '무상 3억달러, 장기 저리 2억달러 상당의 물자'를 받았다. 우리 수출이 연 2억달러가 안 되던 시절이다. 이 돈은 포항제철·경부고속도로 등의 밑천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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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구권협정에는 강제징용 피해에 대한 보상도 명시돼 있다. 강제징용자를 103만여명으로 산정하고, 개인청구권에 대해서는 '나라로서 청구하며 개인에 대해서는 국내에서 조치하겠다'고 했다. 피해자를 대신해 자금을 받은 한국 정부가 개별 보상으로 해결한다는 얘기였다. 하지만 대부분 자금을 경제 개발에 투입하다 보니 피해자들에게 돌아간 돈은 92억원에 불과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만든 민관합동위원회가 이 문제를 제기하면서 정부는 다시 피해자 7만2631명에게 6200억원의 위로금을 지급했다.

▶노무현 정부 위원회도 청구권 협정 일본 자금 중 3억달러는 징용 피해 보상이 감안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해찬 총리가 위원장, 문재인 민정수석은 멤버였다. 이렇게 정리됐던 개인청구권 문제는 2012년 대법원이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청구권이 살아있다'는 해석을 내리면서 한·일 관계의 '폭탄'으로 돌아왔다. 당시 주심인 김능환 대법관은 "건국하는 심정으로 (판결문을) 썼다"고 했지만, 정부는 딜레마에 빠졌다. 판결을 따르자니 국제적 합의를 깨야 하고, 그렇다고 판결을 무시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됐다. 이후 외교부와 대법원은 최종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의견을 교환했다. 이 정부는 이를 '재판 거래' '사법 농단'으로 낙인찍었다.

▶최근 현직 부장판사가 전 정부 대법원이 강제징용 사건 판결을 미룬 데 대해 '외교적 해결을 위해 시간을 벌어준 측면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민감한 외교 사안과 사법 판단 사이에서의 고민을 정권·검찰이 일방적으로 적폐로 몰았다는 비판이다. 다람쥐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한·일 악순환은 언제나 끝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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