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전략적 침묵'한다는 청와대, 무능 무책임일 뿐

조선일보
입력 2019.07.04 03:18

일본의 무역 보복을 완전히 무방비 상태로 당한 정부가 우리 기업들을 탓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일본 언론에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 계획이 보도되자 산업자원부는 삼성·SK·LG 등의 임원들과 가진 회의에서 "기업들은 일본에 지사도 있고 정보도 많을 텐데 사전 동향을 파악하지 못했느냐"고 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강제징용자 배상을 둘러싼 외교 갈등 때문에 빚어진 정부발(發) 폭탄이다. 외국 정부 동향을 파악해서 기업들에 제공해야 할 정부가 기업들에 "왜 몰랐느냐"고 묻다니, 이럴 거면 대사관은 왜 있고, 외교관은 왜 내보내나. 정부는 무엇 하러 존재하나.

일본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았다는 징후는 여러 차례 있었다. 작년 11월 일본 정부가 사흘간 불화수소 수출을 중단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업계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당시 산업부가 소집한 대책 회의에서 관련 우리 기업들은 일본이 수출 규제에 나설 경우 심각한 타격을 입을 소재와 장비 등을 보고했다. 이번에 일본 정부가 보복에 나선 3개 소재 품목도 바로 그 보고에 들어 있었다. 일본 재무상이 지난 3월 의회에서 "일본 기업 피해가 현실화하면 여러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발언했고, 반도체 등을 타깃으로 다각도로 보복 조치를 검토한다는 일본 언론 보도가 수도 없이 나왔다. 그런데도 정부는 일본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지 깜깜했다.

비판이 쏟아지니 어제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우리가 손 놓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부는 롱(long) 리스트를 갖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일본의 보복 카드 리스트를 작성해놓고 정부가 예상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일본이 수출 규제한 품목은 정부 리스트 1~3번에 있던 것이라고 했다. 그랬다면서 당장 오늘(4일)부터 3개 소재의 수출 규제가 시작되는데 정부가 내놓은 대책이라고는 'WTO 제소' '수입선 다변화'와 '연 1조원씩 투자해 국산화'가 전부다. 일본이 세계시장을 석권한 품목들인데 수입선 다변화가 되나. 국산화가 쉽게 될 것이면 지금까지 왜 안 됐겠나. 한가한 얘기일 뿐이다. 청와대는 산업부에 미루고, 산업부는 기업 등을 떠밀었다. 대일 강경 외교 일변도이던 청와대는 제대로 언급조차 하지 않고 있다. '전략적 침묵'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문제 해결 능력이 없는 무능이자 무책임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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