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변호사들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30대 미혼 女변호사' 놓고 남녀갈등
전문가들 "업계 불황에 경쟁자 공격 심리"
최근 한 로스쿨 인터넷 커뮤니티에 '미혼 여성변호사'를 비하하는 글이 올라와 논란을 빚고 있다. 주식이 휴지조각이 되는 '상장 폐지'에 빗대 결혼시장에서 30살 이상의 여성 변호사를 아무도 찾지 않는다고 조롱한 것이다. 글은 순식간에 수십개의 댓글이 달리며 남녀갈등으로 번졌다. 이 커뮤니티에는 변호사만 7500여명, 예비 법조인인 로스쿨생을 포함하면 회원수가 1만5000여명에 이른다. 국내 최대 법조인 커뮤니티에서 어쩌다 때아닌 성(性)대결이 불거진 것일까.
지난달 14일 오전 8시쯤 이 커뮤니티의 한 회원은 자유게시판에 익명으로 ‘1기인데, 여변(여성 변호사)들 상황 심각하다’는 글을 올렸다. 그는 "주위에 30대 초중반 이상 여변들이 많다. 1기 여변만 말하는 게 아니라 그 아래 기수나 사법연수원 출신 여변까지 포함한다"며 "본인들은 자기 스스로를 골드미스라고 자기위안하지만 현실은 올드미스 내지는 상장폐지다"라고 했다. 그는 이어 "같은 직장 남자들만 있는 단톡방이 있는데 ‘나이 많은 여변들 소개팅 할래’라고 하면 갑분싸(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진다) 된다"며 "저는 기혼자라서 소개팅 많이 연결시켜주는데, 여자 32부터는 아예 올리지도 않는다"고 했다.
이 글은 금방 논란이 돼 ‘댓글전(戰)’으로 이어졌다. 글 게시 1분 만에 "결혼했다는데 다른 여자한테 이렇게 관심 많은 거 마누라도 아느냐"는 댓글부터 "현실을 지적한 글을 다른 여자한테 관심이 많다고 해석하는 늙은 여변은 도대체…", "아재요. 팬티에서 쉰내 나니까 팬티나 매일 갈아입으세요", "여변들 상황 정말 심각하다. 더 늙기 전에 현실파악 좀 했으면 좋겠다"까지 거친 독설이 오갔다.
사실 이 커뮤니티에서 여성 혐오 논란이 일었던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자유게시판 등에는 최근 한 달 사이만 ‘20살 여자 전문대생 외모 평범 vs 30살 예쁜 여자 변호사’, ‘30대 여변 완벽해부’, ‘아무튼 남자는 혼자 살지언정 나이든 여자랑은 안 한다’ 등의 글이 올라왔다. 지난 2일에도 ‘골드미스의 마지노선은 33살, 고스펙은 결혼의 장애물’이란 글이 게시됐다.
이같은 커뮤니티 분위기를 비판하는 글도 눈에 띈다. 자신을 남성 변호사라고 소개한 익명의 글쓴이는 ‘여변들한테 억하심정이라도?’라는 제목의 글에서 "별 이유도 없이 툭하면 여변 결혼 못한다는 얘기 꺼내고 자꾸 그걸 상기시키면서 당사자들을 괴롭히는 이유가 뭐냐"며 "자기가 연애시장에서 기대보다 장사가 안 되니 짜증나서 애먼 여변한테 화풀이하느냐. 한심해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회원도 ‘나이든 여변 왜 괴롭히는지…’라는 글을 올려 "변호사가 됐으면 최소한 인권에 대해 배웠을텐데, 이렇게 깊이가 떨어져서야 어찌 약자의 편에 설 수 있을지 의문"이라며 "그 내심은 본인의 열등감을 우월감으로 극복하려는 이유뿐이겠지. 측은하다"고 했다.
로스쿨 커뮤니티에서 나타나는 여성 혐오를 두고 일각에서는 업계 불황도 한 몫 한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와 달리 변호사의 지위가 점점 더 불안정해지자 경쟁자라고 느끼는 다른 성(性)을 배척하는 모습"이라며 "자신의 지위가 위태로워지면 경쟁자를 제거하거나 누르고 싶어하는 게 일반적인 심리"라고 했다. 올해 변호사시험 합격률은 로스쿨 제도가 도입된 이후 처음으로 올랐다. 이미 경쟁이 치열한데, 시장에 추가로 진입하는 변호사 숫자가 더 빠르게 늘어난 것이다. 반대로 로스쿨 재학생들은 앞서 변호사시험에 떨어졌던 인원이 계속 누적되며 합격 문턱이 더 높아지는 게 불만이다. 여기에 법률구조공단의 무료변론이나, 법무부가 추진 중인 ‘법률홈닥터’, ‘형사공공변호인 제도’ 등 변호사들의 벌이를 위협하는 공공 법률 서비스도 확대되고 있는 추세다.
사회학 박사인 오찬호 작가는 "법학 시험에만 쏠려 있는 현 법조인 양성 시스템이 문제가 있는 것 같다"며 "변호사가 되는데 젠더감수성은 평가되지 않는다. 변호사라면 기본적으로 인권에 대한 소양이 있을 것이라는 시각은 버려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