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후 처음으로 일본 정부의 대한(對韓) 경제 제재가 발동됐지만, 청와대는 이 사실을 일본 신문을 보고서야 알았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판문점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는 세부 내용을 몰라 허둥거렸다. 이런 사태는 한·일 양국이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갈등이 계속되면서 나온 현상이다. 현재와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결국 양국이 공멸할 수도 있기에 상황이 더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청와대와 아베 총리의 집무실인 간테이(官邸) 간에 고위급 핫라인을 신속하게 재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본보 취재 결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일 국가안전보장국장은 1년 넘게 만나지 않은 것은 물론 통화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직업 외교관 출신인 정 실장과 야치 국장은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만 해도 핫라인을 유지해왔다. 두 사람은 지난해 4월 미 워싱턴 DC를 동시에 방문했을 때도 존 볼턴 미 국가안보보좌관과 함께 만나 현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의용-야치' 채널은 2015년 맺은 위안부 합의를 문재인 정부가 사실상 파기하고, 지난해 10월 대법원의 배상 판결이 나오면서 폐쇄된 상태다. 한국 측 소식통은 "아베 내각이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국제법 준수'만 외치는 상황에서 정 실장이 굳이 연락할 필요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고 했다. 일본 측은 "야치 국장은 일본 내 우익의 비판을 받아가며 위안부 합의를 어렵게 성사시켰는데, 한국에서 협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큰 상처를 입었다"고 했다.
오쿠조노 히데키(奧園秀樹) 시즈오카(靜岡)현립대 교수는 "양국 간 '불통(不通)' 상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곤란하다"며 "외교 비밀이 보장되는 고위급 대화 채널을 신속히 재건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