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영국령 홍콩기

조선일보
입력 2019.07.03 03:16

홍콩 반환을 앞두고 홍콩인들은 "1997년 이후에는 어떻게 될까?"라는 말을 입에 달고 다녔다. 영국 통치 때처럼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받을지 불안해했다. 당시 답은 "97년 이후엔 98년이 온다"였다고 한다. 알 수 없다는 얘기였다. 홍콩인 30여만 명이 해외로 이주했다. 덩샤오핑이 직접 나서 민심을 달랬다. "50년간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로 언론 자유 등 홍콩 시스템을 보장한다"고 했다.

▶'중화 부흥'을 내건 시진핑은 이 약속을 저버렸다. 덩샤오핑은 '항인치항(港人治港·홍콩인의 홍콩 통치)'과 '고도자치(高度自治·높은 수준의 자치)'를 다짐했지만 시진핑은 2014년 "홍콩 행정장관 직선제"를 요구하던 홍콩인의 '우산 시위'를 힘으로 눌렀다. 공산당 비판 책을 낸 사람들이 쥐도 새도 모르게 중국으로 끌려갔고 바른말 하는 기자들은 괴한의 습격을 받았다. 홍콩 지식인들은 두려움에 입을 닫았다. 

[만물상] 영국령 홍콩기
▶지난 10년간 홍콩 아파트 값이 네 배 뛰었다. 6평짜리 '나노 아파트'가 한국 돈 6억원이다. 중국인 졸부들이 몰려와 투기를 한 탓이다. 홍콩 서민, 특히 젊은 층이 평균 250만원 정도인 월급을 모아 집을 산다는 건 불가능해졌다. 홍콩 경제가 중국에 흡수되면서 홍콩 일자리도 본토 출신이 차지하고 있다. 소득 불평등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는 0.5를 넘어섰다. 폭동이 일어날 수 있는 수준이다.

▶그제 홍콩 반환 22주년을 맞아 2030세대로 구성된 시위대가 경찰 벽을 뚫고 의사당을 점거하고 연단에 '영국령 홍콩기'를 내거는 초유의 일이 벌어졌다. 이들의 요구는 중국이 홍콩인을 잡아갈 수 있는 '범죄인 인도법' 완전 철회였다. 나이로 볼 때 이들이 영국 통치를 직접 겪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리력을 사용했던 경험도 없다. 그럼에도 의사당에 난입해 22년 전 홍콩기를 다시 꺼낸 건 중국이란 나라에 대한 불신 때문일 것이다. 입장을 바꿔 북한이 한국인을 잡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겠는지 생각해보면 홍콩인들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017년 이민 간 홍콩인이 2만4300명으로 2016년의 6100명보다 4배 늘었다. 지난해 홍콩 중문대 조사에서 18~30세의 51%가 이민을 생각하고 있다고 답했다. 2047년이면 홍콩은 중국의 일개 도시가 된다. 지금 홍콩인들은 공산 독재와 민주주의는 공존할 수 없고, 중국이 인간의 존엄이 보장되는 합리적이고 상식적 체제로 바뀌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느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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