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스북은 결코 한국에서 투자받지 못했을 겁니다. 아마존과 같은 인터넷 서점이 한국에서 투자 받았을 것 같지도 않고요. 투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만을 원하는 곳에서 기업가 정신은 싹트지 않습니다."

지난 19일 미국 시애틀에 있는 한 사무실에서 만난 조셉 윌리엄스(Williams)씨는 스타트업이 성공하는 조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 3년간 워싱턴주(州) 상무부 정보통신기술(ICT·Information & Communication Technology) 특별보좌로 일하며 제이 아인슬리 워싱턴 주지사의 자문을 맡았다. 현지 언론은 그를 주지사의 ‘테크 구루(tech guru·기술 분야 스승)’라고도 표현한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썬 마이크로시스템즈 임원, 대학교수 등으로 일했고 인터뷰 후인 지난 23일 환경·에너지·생명과학 등 신성장 분야를 연구하는 미국 에너지부 산하 퍼시픽노스웨스트국립연구소(PNNL) 시애틀지사 이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를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

미국 시애틀의 한 사무실에서 신평재(왼쪽)이 조셉 윌리엄스씨를 인터뷰하고 있다.

-시애틀을 포함한 워싱턴주는 지난 10년간 눈부시게 발전했습니다. 정부는 어떤 역할을 했나요?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는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에 그쳐야 합니다. 기업이 잘 성장 할 수 있도록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일이죠. 땅에 비료를 뿌리는 것처럼요. 규제는 최대한 가벼워야 합니다. 기업들이 규제로 허덕이면 성장할 수 있겠습니까."

-규제를 없애는 일 말고 정부가 나서서 한 일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시장에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는 물론 정부가 해결해줘야 합니다. 워싱턴주는 매년 오르고 있는 주거 비용, 기업들이 몰리면서 부족해진 사무 공간, 도심 교통 체증 등의 문제를 앓고 있습니다. 이건 시장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입니다. 방치한다면 지금과 같은 발전 추세가 유지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기업의 하는 일을 망치지 않도록 이런 일들을 개선하는 데 있습니다."

조셉 윌리엄스씨는 “최소한의 규제가 스타트업을 촉진하는 문화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부족한 부동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입하다가 시장을 왜곡시킬 염려는 없나요?
"이미 벌어진 이후에 개입하면 부작용이 심합니다. 하지만 사전에 하는 대비는 다르죠. 워싱턴주를 기반으로 한 기업용 데이터 분석 플랫폼 업체 '태블로'(Tableau)의 경우 세일즈포스닷컴(Salesforece.com)에 160억 달러(약 18조 4700억원)에 인수되었습니다. 인수 이후 사업이 확장될 것은 기정사실이었죠. 그래서 세인즈포스 CEO에게 계획을 물었습니다. 그들은 6500명을 신규 채용할 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들이 들어갈 집, 학교 정원, 보육 시설 등을 대비했습니다. 규제는 가볍게 해 기업 활동을 지원하고 그들이 혁신을 거듭할 수 있도록 튼튼한 생태계를 만들어준다는 것이죠."

-한국에서는 그런 '간접적 방식'이 아니라 정부가 직접 나서서 스타트업 창업에 개입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개입한다면 사람들이 자유롭게 스타트업을 창업하는게 어려울텐데요. 정부의 역할은 스타트업 창업이 왕성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는데 그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실패를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도록 말입니다. 미국의 문화에서는 만약 당신이 스타트업을 시작하고 실패했다고 해서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여러 번 실패할 수도 있고 그게 가족들에게도 전혀 부끄러운게 아니에요. 정부도 당신의 실패에 대해 난처하게 생각하지 않아요. 당신의 아이디어가 좋다면 여전히 당신은 자본을 축적한 겁니다. 하지만 제가 경험한 한국은 실패를 잘 받아들이지 못하더군요."

윌리엄스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최고기술책임자(CTO)로 있으면 KT 등 국내기업과 많은 프로젝트를 수행했다.

"KT랑 많은 일을 했었는데요. 그들은 큰돈을 투자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대단한 일도 할 수 있었죠. 그런데 그들은 큰 위험을 떠안기 싫어했습니다. 실패하는걸 두려워하더군요. 그래서 그들은 안전한 것에만 투자했어요. 그게 알리바바가 한국에서 나올 수 없었던 이유기도 하고요."

-그런 기업가 정신은 어떤 환경에서 자랍니까?
"결국 실패를 잘 받아들이는 문화가 기업가 정신을 만듭니다.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는 기꺼이 위험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제조업 기반의 문화에서는 위험을 회피하려고 하려는 성향을 보입니다. 투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을 원하는 것이죠. 결국 투자한 자산에 대한 이익률로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해요. 그러나 기업가정신은 절대 그런 환경에서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 환경에서는 스타트업으로서 투자를 받기도 쉽지 않을 거고요. 당신이 남들에게는 미친 것처럼 보이는 아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누가 거기에 투자하려고 하겠습니까?"